비행기를 타고 콜럼버스가 상륙했던 중미 아이티의 히스파니올라 섬 위를 날다보면 마치 화염방사기로 녹색 초원을 모조리 태운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콜럼버스가 이 땅에 내리기 전 800만 원주민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침략자들은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거나 무참히 살해했고 60년만에 순수 원주민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아이티로 실어온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농장을 경영하고, 또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산림으로 뒤덮였던 섬은 이제 숲 면적이 1%도 되지 않는 황폐한 땅이다.
숲의 파괴와 생태계의 교란, 화석 연료의 고갈에 대한 경보는 수없이 들어왔다. 체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면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뻔한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식상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이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The Last Hours Of Ancient Sunlight)」이란 다소 충격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둔감한 많은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해줘야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말은 「선전용 문구」라기보다 「진실」에 가깝다.
70년대부터 살렘아동마을을 운영하면서 아동문제, 장애자문제, 환경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또 인기있는 저술·강연가로 활동하는 미국의 톰 하트만은 이 책에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명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그 야만은 왜 더욱 번져가는지, 누구 때문에 일어나는지, 그리고 종착역은 어딘지도 말한다. 그의 고발은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일들에 바탕하고 있고, 꽤나 많은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어 살아있는 이야기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아이티에서 나무가 사라지고 없는 대지를 보았듯이 그는 필리핀에서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 네팔에서 하루치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 네 시간을 걷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사막의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상황은 이렇지 않았다고 원주민들은 말한다.
하트만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은 햇빛에너지를 흡수해야 살 수 있고 생물은 지구에 쏟아지는 햇빛에너지의 양에 따라 개체수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면서 살아왔다고 본다.
그런데 인간은 지구에 쏟아지는 한정된 햇빛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의 햇빛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내 자신의 개체수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동물의 몸에 축적된 햇빛에너지를 사용하는 노예노동, 4억년 전 식물들이 흡수하여 땅 속 깊은 곳에 저장하고 있던 햇빛에너지인 석탄과 석유의 마구잡이 사용. 1900년대에야 널리 퍼진 석유의 사용은 10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지구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는 상황을 불러왔다.
대안의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하트만의 주장이다. 그것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 발생 이전 태고 인류들이 살던 방식,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 흩어진 원주민들의 공동체 생활에서 찾는다.
태고의 인류와 현대의 부족민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우선했다. 눈 앞의 이익을 보고 한정된 자원을 분별없이 쓰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 속의 신성을 느끼면서 무한히 지속할 수 있는 생명유지 방식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산업사회의 어떤 계급보다 많은 여유를 즐기면서 자신을 실현했고 항생제를 발견하기 전의 현대인들보다 장수했다고 지적한다.
세상을 바꾸는 출발은 자기의 내면 돌아보기, 곧 명상이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습성을 버릴 때 우리는 실제 순간, 신성한 지금을 체험할 수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현재성을 체험하는 방법을 배워라』고 그는 주문한다.
햄버거가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소를 기르기 위해 많은 나무가 베어진다) 앞에서 무얼 해야할지 홀연히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24세의 미국 여성 줄리아 힐이 2년 동안 나무 위에 살면서 2,000년 묵은 삼나무가 베어지는 것을 결국 막아낸것처럼.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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