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어야 말이 되는가. 「누드」(Nude)라는 말이 세기말 우리 사회의 유행어가 됐다.미술의 한 영역 정도로 인식되던 이 용어가 어느사이 인구에 회자되는 유행어로 탈바꿈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년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한 소주회사의 알몸광고, O양비디오와 탤런트 서갑숙 신드롬, 대학가의 누드 퍼포먼스 논쟁, 누드목걸이와 누드 가전용품 등 누드를 이용한 각종제품들….
누드는 어느덧 우리사회 전반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테제로 떠오른 것이다.
■누드 열풍
새천년을 코앞에 둔 우리사회의 누드열풍은 놀랍다 못해 황당할 정도다. 그 속도가 놀랄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성격은 조금 다를 지 모르지만 96년 「빨간마후라사건」은 한국의 포르노 문화를 「셀프서비스」로 바꿔놓았고 『나도 벗은 몸을 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한 시발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후 남녀가 자신의 성관계를 스스로 비디오에 담는 「셀프포르노」가 유행처럼 번졌고 올해 터져나온 「O양 비디오사건」은 그동안 물밑논의만 무성했던 노출의 담론을 우리사회 전반에 파급시켜 놓은 도화선이 됐다.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젊은시절의 벗은 몸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망아래 누드 사진촬영이 붐을 이루고 있으며 누드 립스틱, 누드 콘서트, 누드 목걸이, 누드 전화기, 심지어 누드김밥까지 등장했다. 「누드」란 단어가 담긴 제품들이 득달같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지난7월 시작된 보해소주의 광고는 대중문화 전반에 누드신드롬의 불을 지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논란은 연세대 성문화연구회 「몸」이 추진한 누드퍼포먼스. 학교측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누드논란을 공공의 장으로 이끌어낸 계기로 평가된다.
서양에서 「누드」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2세기 전쯤이다. 18세기 서양미술에 처음 등장한 「누드」는 「벌거벗은 몸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이란 뜻을 내포했다. 우리나라에서 누드란 단어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년전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누드란 누드모델, 누드그림 이상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96년4월 한국누드모델협회가 세계 최초로 조직됐고 생소하기만 하던 이 분야는 사람들의 뇌리에 서서히 각인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화제가 됐던 거짓말, 노랑머리, 해피엔드 등의 영화에서도 주연배우들이 말그대로 화끈하게 전라의 연기를 했다.
■왜 누드 인가
전문가들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속성중 하나인 「몸의 상품화」가 보수와 개방 진영의 진정한 토론없이 비판과 옹호의 양극단만을 달려온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감춰져오기만 했던 「노출의 담론」이 이제서야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누드 담론도 건전한 토론보다는 서로를 비난하며 「한건」을 터뜨리는 식의 선정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전주대 영상예술학부 이재현(李在賢)교수는 『현재의 누드열풍은 한국사회가 인간의 몸을 보여주는 것을 너무나 억압하면서도 은밀한 곳에서는 건전하지 못한 성이 난무하는 이중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잘보여준다』며『인간의 몸이 상품화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이에 대한 충반한 토론은 계속 미뤄져 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건전한 토론문화의 부재가 하낭 신드롬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회의 흐름을 포착한 업계의 발빠른 대응도 누드가 가지는 「몸에 대한 고찰」과는 상관없이 신드롬에 불을 지핀 원동력이 됐다. 누드광고로 인기와 비난을 한몸에 받아야했던 보해소주 최정규(崔正圭)홍보팀장은 『가식을 벗어던진 순수를 표현하고자 누드광고를 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그 반응이 지나치게 뜨거워 부담스럽기까지 하다』면서도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우리사회의 속성이 O양, 서갑숙 신드롬과 얽혀 하나의 누드신드롬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밝혔다.
■누드열풍, 문제점은 없나
전문가들은 「누드」라는 단어가 상업주의의 영향으로 단순히 「벗는 것」으로 폄하되고 있으며 단어가 갖고있는 다원적인 의미를 사회가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중앙대 영문과 정정호(鄭正浩)교수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이를 지나치게 성(性)과 연관지어 생각함으로써 현상 자체에 대한 논의조차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건설적인 토론문화가 아쉽다』고 밝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전종천(全鍾千)기획실장은 『누드 담론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토양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창작의 자유라는 명분아래 벌어지는 영화 광고등의 선정주의의 여성과 청소년에 독약』이라며 『건전한 성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나친 누드열풍보다는 각 영역에서 신중한 논의를 벌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해소주 불매운동을 추진중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전상금(全相錦)매스컴 모니터는 『누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파급효과가 엄청난 신문광고에 누드사진을 싣은 것은 도덕과 윤리에 크게 어긋난다』며『대중매체의 무비판적 수용은 누드 자체에 대한 논의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현경기자
moore@hk.co.kr
■[월요포커스] "누드의 본질은 순수와 신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벗은 몸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자세만 갖춘다면 굳이 「신드롬」이란 단어를 쓸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한국누드모델협회 하영은(夏英恩·사진)회장은 최근의 「누드신드롬」이 누드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확장되고만 있는 것이 마뜩치 않은 듯 이렇게 말했다. 지난 96년 6월 창립한 이 단체는 창립기념행사로 가졌던 「누드쇼」가 외설성여부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등 그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켜왔다.
『창립당시만해도 파장이 엄청났죠. 거의 매일같이 경찰이 집에 찾아왔고 각지에서 항의, 격려전화가 잇달아 하루종일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하씨는 우리 사회가 누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20여명에 불과했던 회원수가 어느새 200명을 넘어섰고 회원의 연령층도 30,40대는 물론 50,60대까지 다양해 진것은 누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났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씨는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여전히「누드」란 단어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며『누드를 순수한 예술로 보기 보다는 이를 성(性)과 연결지어 생각해 외설로 격하시키는 자세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최근의 누드신드롬에 대해 하씨는『누드의 본질은 인간의 몸이 가지는 「순수함」과 「신비함」에 대한 고찰에서 찾을 수 있다』며 『인간의 벗은 몸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지 못하면 이는 단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하씨는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누드광고에 대해서『제품과 인체가 별 연관이 없는데도 눈요기성으로 누드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누드의 순수성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씨는 『한번 쯤 주위를 둘러보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할 때 「누드신드롬」은 보다 건설적인 방향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현경기자moore@hk.co.kr
■ 『잘 모르겠습니다』『글쎄요, 막상 그렇게 물으시니 대답하기가 어렵네요』『난 그런 거 대답 안할래요, 내가 무슨 성(性)문제 전문가입니까』
각계의 문화평론가, 학자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게 『누드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누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물었지만 별 신통한 답을 듣기란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바로 누드』라고 답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우선 이런 현상의 원인은「누드」란 단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그동안 너무 포괄적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여성연구소 이박혜경(李朴惠暻)씨는 『누드란 단어는 「자연, 순수, 노출」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누드를 너무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어 정의내리기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누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통합돼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다양화 되고 이를 각각의 사안에서 해석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누드」를 막연히 금기시하는 사회풍토 때문에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한 탓도 있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평론가 A씨는 『마치 내가 성(性)문화 평론가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더이상 이런 문제에 답하고 싶지 않다』고 답함으로써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이들에게까지 「누드」가 부담스런 명제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여기 저기에서 「벗는」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누드신드롬」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남은 채 심도있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김현경기자moo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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