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2000년대에 꼭 이루고 싶은 것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하자 『배가 고프지 않았으면』이란다. 또 『좋은 옷 실컷 입고 단칸방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 『우리 집에 쌀이 없어요. 쌀 좀 주세요』란다.바로 어제 나에게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왔었다. 집에 반찬이 하나도 없고 쌀도 떨어져 아버지가 김치만 시장에서 조금 사왔단다. 그 아버지는 실직자다.
또 한 여중생도 있었다. 건축노동자인 아버지가 일거리가 없어서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 일하러 가겠다고 해서 저녁내내 펑펑 울았단다. 그러나 아빠는 일거리가 없다고 되돌아왔고 그 여중생은 5개월치 밀린 사글세 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나에게 와 도와달란다.
그 뿐이 아니다. 한 중학생은 시에서 나온 학자금을 생활비로 써버린 장애인 아빠와 몸이 아픈 엄마를 원망하며 울었다. 이 아이는 영양실조로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키만 하다. 노동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4년간 아침밥을 굶은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내가 밥을 먹으면 아버지 드실 쌀이 없다』고 걱정했고 지난 겨울 내내 우리 선교회의 신나는 집에서 아버지가 드실 쌀과 반찬을 얻어갔다.
가난한 공단지역, 빈민지역, 농어촌, 탄광지역에는 아직도 IMF 경제대란이 끝나지 않았다. 2년째 접어드는 이 깜깜한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결식아동의 무능력한 아버지는 『차라리 어둠 속에 갇혀서 세상 더러운 꼴 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가슴아파 하는 것은 아이가 신나는 집에서 밥 얻어먹는 아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다. 아직도 학교와 동네에서 손가락질당하고 있는 배고픈 아이들은 이번 겨울방학에도 「5만, 10만원짜리 급식권으로 겨울 급식이 끝났다」고 여기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직무유기와 방임속에 놓여있다.
공무원들은 학교의 하루 한끼 급식으로 우리나라에는 결식아동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들은 이들의 태만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학교급식 대상이 아닌 취학연령전 아이들, 친구들의 낙인이 두려워 점심시간에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면서 배고픔을 감추는 중고생들은 전국의 학교 급식대상자인 결식아동 16만4,000명에서 누락되어있다.
왜 결식아동들은 1년 365일중 280일만 학교 급식을 받을 수 있는가. 아동들은 1년내내 하루 한끼 밥먹을 권리도 없다는 말인가. 어른들은 하루 세 끼 밥을 배불리 먹으면서 가난한 결식아동들은 하루 한 끼만 먹으라는 논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두뇌한국사업의 대학 지원금은 300억원이라고 들었다. 전국의 결식아동에게 방학 한 달간 급식비로 10만원짜리 급식권을 다 주어도 170억원밖에 안든다.
목욕탕도 없는 지하방에서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된장」이라고 놀림받는 이 지독한 가난의 현실을 해결할 길이 무엇이냐고 묻지는 않겠다. 10~20평 남짓한 좁은 곳에서 허리인대가 늘어나도록 배고픈 아이들에게 전쟁 치르듯 밥을 해먹이는 전국 36개 신나는 집 교사들의 수고를 알아달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배가 고파 사랑이 더욱 그리운 아이들에게 하루 세 끼 밥만이라도 날마다 먹일 수 있어야 한다. 결식아동이 없다느니, 실직자와 결식아동의 문제는 상관없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생각은 이제 중지하자. 배가 고파 방황하는 차세대 꿈나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발 만들어 나가자. 우리들의 큰 사랑으로.
그리고 꼭 기억하자. 오늘도 서울시내 모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전체 학생 300여명중 급식비가 체납된 80여명이 식판을 받지 못해 점심 급식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를 보다 못한 학부모 배식 도우미들이 같은 반 친구들의 식사가 끝난 뒤 식판을 부랴부랴 씻어 남은 밥과 반찬으로 결식 아동들을 먹였단다. 대망의 새 천년을 맞이하는 길목에 서서 말이다.
/강명순·부스러기 선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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