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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문체제'청산 출발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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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문체제'청산 출발점 돼야

입력
199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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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경관 이근안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짐작하던대로 이씨의 잔혹한 고문범죄는 악명높았던 치안본부 대공수사조직뿐 아니라 안기부의 지휘·조정아래 이뤄진 사실이 확인됐다. 심지어 검찰 공안조직도 고문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고문사실이 폭로된 뒤에도 대책을 논의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오랜 세월 은밀하게 자행된 고문범죄를 국가조직이 공모하거나 눈감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검찰수사는 이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공권력을 빙자해 숱한 무고한 국민에게 감내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주고, 사회전체를 가위눌리게 한 고문범죄의 진상과 배후를 부분이나마 밝힌 것은 지난 과오를 반성하는데 도움될 것으로 본다. 이는 이씨를 비롯해 여러 관련자들의 범죄혐의가운데 대부분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게 된 것과는 관계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검찰수사의 한계 또한 뚜렷하다. 이미 알려진 고문의혹 사건을 수사하는데 그쳤고, 수사대상이 된 관련자도 경찰조직을 제외하고는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김근태씨 고문수사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이었던 정형근의원의 개입사실만 두드러질뿐, 안기부등의 지휘체계에 따른 책임은 모두 밝히지 않았다.

특히 고문경찰의 대부격인 박처원 전치안감에게 10억원을 마련해준 경찰조직이 고문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이씨의 도피행각을 방조한 의혹이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당시 치안본부장은 혼수상태에 있고 박치안감 역시 고령에 병이 깊어 불구속기소했겠지만, 경찰의 총체적 과오를 묻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이래서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고문범죄를 철저하게 반성, 고문관행을 이 땅에서 추방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씨가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범행은 인정하면서도, 재판중인 사건에서는 고문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점이 이런 우려를 더한다. 고문범죄의 상징인 이씨의 자수를 사회전체가 반긴 것은 단순히 그와 몇몇 관련자들의 범죄를 밝혀내 처벌할 수 있게 된 때문이 아니다. 암울했던 지난 시대 국가조직이 고문으로 인권을 학대한 실태를 모두 밝혀 사회가 함께 반성, 고문체제를 영원히 청산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현대사의 고비마다 단 한차례도 진정한 과거청산을 이루지 못한 폐해를 인식한다면, 검찰수사를 고문관행 청산의 출발로 삼아야 한다. 국가의 인권탄압 범죄가 만연했던 중남미 여러나라와 남아공 등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적 화해와 새로운 국민통합을 이뤄낸 사례를 교훈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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