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의 러시아 여대생이 전세계의 학자 및 작가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국제 밀레니엄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1위에 선정됐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최근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생 이베타 게라심추크가 독일 바이마르시가 주최한 콘테서트에서 123개국에서 응모한 2,480명중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보도했다.이번 콘테스트는 바이마르시가 99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것을 기념, 97년에 「미래로부터 과거의 해방, 과거로부터 미래의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시간에 관한 추상적인 주제을 내걸고 응모작을 공모했다.
남아프리카와 국제환경정책을 전공하는 게라심추쿠가 제출한 에세이의 제목은 「바람의 사전(Dictionary of Winds). 독일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아랍어 등 7개 언어로 제출된 이번 콘테스트에서 게라심추크는 61개의 독특한 개념을 철학 신화학 역사학 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시간을 분석, 최고 점수를 받았다. 1등을 놓친 경쟁자 중에는 미 워싱턴대 법학과 루이스 월처 교수, 유고 작가 벨리미르 쿠르구스 카지미르, 미국의 시인 크리스토프 월 로마나 등 전문가들이 망라돼 있다. 게라심추크는 총 10명의 입상자 중 최연소이자 유일한 여성이다.
게라심추크는 어려서부터 두각을 보였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600마일 떨어진 시골마을 사마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국내의 에세이 및 논문 콘테스트에서 여러번 입상했다. 특히 17세이던 96년 러시아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1위로 뽑혀 국제관계대학 입학자격을 얻었고 동시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바람의 사전' 서문 요지
선조 들은 하루를 다음 날과 구분하거나 한 해를 다음 해와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오른손이나 왼손을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듯이 과거를 미래로부터 분리하거나, 반대로 미래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서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이 생긴다.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곧 시간의 파괴를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제논이 그 풀리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입증했던 것처럼.
그러나 제논은 여러 명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처럼 시간을 해부하려 했던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다. 그들 모두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리라.
그들중 일부는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모든 괴로움을 잊기 위해 「로터스」 열매를 따먹는 것 처럼 여유로움으로 무장한 채 미래를 과거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바로 「미래지향형 인간」이다. 이들은 시간이란 무한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과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괘념치 않는다. 결국 「무한」의 한계는 없고 무한속 세계의 변화에도 한계가 없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시간을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긴다. 이들은 시간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여기며 아무 생각없이 허송세월하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들은 「과거지향형 인간」이다. 이들은 미래를 믿지 못할 뿐더러 시간이 무한하다는 확신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를 믿는다. 그래서 변화를 낳을 수 있는 미래로부터 과거를 해방시키려고 애쓴다.
미래지향형 인간과 과거지향형 인간은 함께 살아간다. 실제 세계에서도 그렇다. 이들은 학구적인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며 그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한다. 또 서로 끝없는 논쟁을 벌인다.
여기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정체된 채 남아있는 똑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논쟁을 가능케 하는 것은 분명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직감때문이다. 그리고 조만간 그들은 해답을 찾을 것이다. 그 해답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시 의심하면서 새롭게 해답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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