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쳤다 소리 듣더라도 창조적으로 생각해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쳤다 소리 듣더라도 창조적으로 생각해야"

입력
1999.12.17 00:00
0 0

비디오아트로 현대미술에 굵직한 획을 그은 백남준(67). 「20세기 최고의 한국예술가」 「전자예술의 미켈란젤로」등의 찬사가 따라다니는 그가 병마를 이겨내고 누구보다도 화려한 밀레니엄을 기다리고 있다.31일 임진각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비디오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이어 내년 2월 11일-4월 26일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뉴욕 소호 머서 스트리트에 있는 거처 겸 스튜디오로 그를 찾았다. 96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몸이 모두 마비된 데다 9월에는 왼쪽 눈 백내장수술까지 받았던 그는 언제 그랬냐 싶게 털고 일어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마비됐던 왼손을 들어보이며) 며칠 후 왼쪽 눈수술을 한 번 더하고 시력도 회복하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요즘에는 지팡이 짚고 소호거리를 걸어다니며 점심식사하는 게 큰 낙이야.

(부인을 가르키며) 저 사람이 내가 아파 병원에 있는 동안 비디오를 찍어두었는데 조만간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어 발표할 거야』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어떤 내용인가요.

『북한에서 제작했던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비디오를 쓰면 좋을 것 같아.화면을 빠르게 했다가 느리게 했다가 조절하면 지루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2000년이 되기 3분전에는 「금강에 살어리랏다」라는 노래를 시작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거지.

미국의 성악가인 트레이시 비티엘로와 함께 한국가곡 「금강에 살으리랏다」를 열창할거야. 비티엘로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최근 소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했어』

-구겐하임 전시회를 맞는 소감도 특별하시겠어요.

『나이 예순일곱이 되가지고 큰 기회가 와서 아주 고맙게 생각해. 누구나 선망하는 휘트니미술관 전시(82년)에 이어 구겐하임에서 죽기 전에 데모 한 번 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 구상과 작품 선정은 끝나셨습니까.

(이번 전시의 핵심은 레이저를 이용한 설치작품 「Modulations in Synch(2000)」이다. 미술관 6층 천장에서 레이저를 1층 로툰다 바닥으로 폭포처럼 쏘아내리고 반대로 100여개의 TV 수상기가 깔린 로툰다 바닥에서도 레이저가 달팽이처럼 생긴 미술관 벽을 따라 올라간다.

달팽이형 내부구조를 추상적인 이미지의 레이저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이다.)

『레이저의 환상적인 색깔이 초월자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해. 그 형상이 사선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라 이름을 「야곱의 사다리」라고 붙였어.

여기에 88년 서울올림픽 때 제작했던 우주오페라 「wrap around the World」에 사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국여자가 경쾌하게 북을 치는 소리가 배경으로 깔려』(동석한 매니저는 2월21일에 관객들이 참여하는 간단한 퍼포먼스도 선보인다고 귀띔했다)

- 구겐하임전시회가 새 천년 첫 전시회라는데 이런 작품구상이 어떻게 새 천년의 이미지와 결합되는 겁니까.

『내가 하는 게 실험적인 아트이니까 일단 한 번 해본 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지』

-전시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92년부터 준비해온 구겐하임 전시작품 제작을 위해 약 300만달러에 이르는 후원을 받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치료에 들어가 어려움이 많았어』

-84년에 예술은 반이 사기이고, 속이고 속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까.

『(웃으며) 예술이나 종교는 모두 사기야. 하지만 그건 동서양의 지성은 물론이고 예술 속에는 항상 비판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벽에 동물 그림이 많은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는 종교와 조물주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어. 진화론이 옳다고 보지만 동물이 어떻게 인간이 됐는지 생각하면 중간과정에서 설명되지 않는 점프가 많잖아.

결국 하느님의 손이 닿았던 것 같아. 그래서 동물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손이 닿는 곳마다 군데군데 크레용으로 그려놓은 동물그림들을 붙여 놓고 가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동물인형들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지.

소학교 4학년때 그린 이후 50여년 만에 크레용을 잡고 그려보니 아주 좋아. 또 비디오나 레이저 작업보다 간편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또 돈이 필요할 때는 갔다가 팔 수도 있고. 그림 한 장에 5,000달러야』

-한국작가를 발굴해서 후계자로 키울 생각은 없습니까.

『글쎄, 자기도 못하는데 남까지 어떻게 해줘요? 조용히 죽으면 됐지. 하지만 한국미술은 잘 될 거야. 자유로운 기질이 있으니까』

-후배작가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늙어도 걱정이지만 젊어도 걱정이야. 비디오는 내가 이미 먹어버렸으니 좀 미안하게 됐고. 아무래도 미친 놈 소리 듣더라도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겠지』

글·사진 뉴욕= 최진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