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영화 속이라고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나 보잘 것 없는 것이 그것의 한계를 깨려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어쩌면 인생의 살아가는 이유, 살만한 이유의 상당 부분일지도 모른다.외국 영화제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해서 오히려 바깥의 소식 때문에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들이 있는데 민병훈 감독의 「벌이 날다」가 바로 그런 영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확실히 돈 되는」 영화가 아니면 배급을 하지 않는 야박한 우리 현실 때문에 어렵게 개봉하게 됐다. 92년 입학, 지난 1월 러시아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민병훈 감독이 98년 초 완성한 졸업 작품인 이 영화는 8,500만원의 저예산 영화이다. 기숙사에서 만난 타지키스탄 유학생 잠셋 우즈마노프와 공동 연출했다. 이 영화 하나로 민감독은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은상, 토리노 국제영화제 대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라고, 게다가 흑백(정확히 말하면 세피아 빛깔의 흑백영화)이라고, 두 주연 배우를 빼고는 모두 비전문 배우를 쓴 영화라고 「지루한 예술영화」는 아니다.
타지키스탄의 작은 마을 아슈트. 8년 간의 내전으로 전기도 끊기고, 물도 부족한 이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주인공 아노르(무하마드 쇼디)는 노인의 지혜로 마을의 기로(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폐지된다는 내용의 「벌이 날다」라는 동화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막막하다. 옆집에 이사온 부자는 검사한테 뇌물이나 먹여 날로 사업이 번창하고, 자신의 아내까지 훔쳐본다. 문제는 화장실. 아노르 집 옆에 지은 화장실 때문에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아노르는 검사에게 달려가 하소연하지만 검사는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면박을 준다. 화가 난 아노르가 검사 방 바로 밑에 공중화장실을 짓자 그는 또다시 「법은 부유한 사람에겐 다르다」고 갖은 편법을 동원해 그를 괴롭힌다. 보잘것 없는 아노르는 검사와 전쟁을 치르듯 화장실을 파내려 간다. 그러나 어차피 패배는 그의 몫. 결국 화장실 자리에선 귀한 물이 나오고, 그것은 200년 만의 우물 발견이었지만 그는 「덮어버릴 것」이라고 역정을 낸다.
주인공 아노르는 처음엔 화가 나서 저보다 큰 짐승을 쏘아 버리는 「침이 있는 벌」이었다. 그러나 배설의 장소를 짓던 그에게 생명의 근원인 우물이 다가오면서 그는 「꿀을 만드는 벌」이 됐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좋은 벌이라고 감독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정적 화면을 잘 잡아내는 민감독의 재주와 잠셋의 역동적 이야기가 어울려 영화는 사람 냄새 나는 동화가 됐다. 24일 동숭아트센터. 오락성★★★☆ 예술성★★★★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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