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이 진통을 겪고 있다. 올해 안에 개정작업을 마무리하고 새 표기법을 고시하려던 계획은 벌써 물건너 갔다.로마자 표기법이란 원래 십인십색으로 의견이 달라 반대가 있더라도 연내 작업을 마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 국립국어연구원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화관광부가 제동을 걸었다. 반대 의견을 좀 더 듣고 되도록 여러 의견을 모으는 것이 좋겠다는 문화부 방침에 따라 지난달 공청회에 이어 이달 2일 전문가 토론회, 16일엔 공개 토론회도 가졌다.
개정안 심의는 미뤄두고 새해에는 국어연구원장이 나서 부산, 대전, 광주, 대구를 도는 지방 설명회까지 가질 예정이다. 처음 개정안이 일부 바뀔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논란은 모음 「ㅓ」의 표기를 둘러싸고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다. 연구원은 「ㅓ」를 「eo」로 적자고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삼성」을 「Samsung」 으로 적듯이 일반인들은 「ㅓ」를 「u」로 표기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연구원이 개정안 마련을 위해 올해 8, 9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일반인들은 「ㅓ」를 「u」로 쓰자는 사람이 51.5%로 가장 많았다.
이에 비해 국어학·언어학 전문가들은 「eo」 표기가 38.9%로 가장 많았고, 「u」(21.2%), 「o'」(15.9%), 「e」(13.0%) 순이었다.
연구원은 특수부호를 없애기로 한 개정 원칙을 지킨다는 뜻에서 「o'」 표기는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또 「u」로 적는 것은 일반인들의 인식을 존중한다는 이점은 있지만, 이때는 많이 쓰는 「ㅜ」자를 「oo」나 「wu」로 적어야 하고, 비영어권에서는 「oo」를 쉽게 「ㅜ」로 읽기 곤란한 문제들이 생겨 수용하지 않았다. 그냥 「o」로 적는 것은 「ㅓ」와 「ㅗ」를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는 것은 개정안대로 「eo」로 적거나 「e」로 적는 것이다. 연구원은 「e」는 「ㅔ」와 「ㅓ」로 함께 읽을 수 있는데, 우리말에서는 「ㅔ」보다 「ㅓ」를 쓰는 경우가 훨씬 많아 「ㅓ」를 「eo」 대신 「e」로 할 경우 표기의 경제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e」는 「ㅔ」와 「ㅓ」로 혼동할 수 있는데다, 「ㅔ」를 「ei」 등으로 적어야 하는데 이를 「ㅔ」로 읽기는 힘들 거라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국어연구원 김세중 어문자료연구 부장은 『「ㅓ」표기는 「eo」를 우선으로 하지만 「e」로 적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바뀔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말 머리 자음 「ㄱ, ㄷ, ㅂ, ㅈ」을 「k, t, p, ch」로 쓰다가 「g, d, b, j」로 바꾸기로 한 것도 여전히 논란이다. 「Kimpo」 「Pusan」 「Taegu」 「Kwangju」로 썼던 지명을 비롯한 고유명사 표기를 모두 바꾸어야 한다는 데 따른 저항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어연구원은 『그동안 익숙해진 것을 버리는 불편이 있기는 하나, 이를 감내하기만 한다면 새 표기법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개정안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16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ㅓ」자 표기를 중심으로 여러 의견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김세중 부장은 『eo가 됐던 e가 됐던 아니면 다른 무슨 문자가 됐던 최종으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 따르려는 자세가 중요하지 어느 것이 더 나으냐를 두고 논쟁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한양대 홍연숙(언어학) 교수도 『어떤 것이든 논란이 있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하여 하루 빨리 고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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