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주연배우를 뽑는다. 캐스팅도 인터넷으로 한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들어 영화의 스토리를 만든다. 인터넷을 통해 영화 제작에 필요한 돈을 모으고, 인터넷 시사회도 연다.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홈페이지 개설은 이제 기본.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네티즌의 선택에 따라 전개와 결말이 달라지는 쌍방향(인터랙티브) 영화도 만든다. 그것을 상영하는 전용 극장도 생겼다.기획에서 개봉후 평가까지, 영화의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통한다. 『네티즌을 잡아라』 그들의 대화의 대상, 호기심의 대상,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성공한다. 아무리 상업성이 없는 컬트, 예술 영화도 네티즌들이 난리를 치면 개봉할 수 있다. 그 이상이다. 「로키 호러픽쳐쇼」나 「블레어 윗치」처럼 흥행에도 성공한다. 한국 영화도 예외가 아니다. 불과 2년 만의 변화이다.
서울 관객 96만명을 동원한, 제목 그대로 올해 한국영화의 「사건」이 된 「주유소습격사건」(감독 김상진). 그러나 시작은 시큰둥했다. 불을 붙인 것은 인터넷 홈페이지(www.juyuso.com). 「주유소 간판」 「현상수배범」 「금고털기」 「신고하기」 등 영화내용을 변형한 재미있는 코너가 영화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0여만명이 조회를 하면서 그 인파가 극장으로 몰렸다. 지금도 하루 1,500~2,000명의 「주유소족」들이 홈페이지를 찾는다. 24일 개봉하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감독 김태용·민규동)는 한 네티즌이 올린 「일곱째 아이의 죽음」에 관한 글을 영화 첫머리에 그대로 인용했고, 두달 동안 사이버 캐스팅 작업을 거쳐 주연 박예진(효신 역)을 발굴했다.
「텔 미 썸딩」(감독 장윤현)은 인터넷 논쟁을 흥행 전략으로 삼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를 의식해 「블레어 윗치」처럼 스릴러의 완벽한 구성과 결말보다는 생략으로 추리와 상상과 호기심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예상대로 영화를 보지 않고는 대화(통신)에 끼지 못하게 된 네티즌들로 「텔 미 썸딩」은 완성도 문제를 떠나 서울 70만명이란 기록을 세웠다. 내년 1월 1일에 개봉할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은 홈페이지(www.peppermintcandy.co.kr)를 통해 홍보 도우미를 모집하는가 하면, 1월 7일까지를 「밀레니엄 특별상영」이라 하여 36회 입장권을 인터넷으로 판매한다.
「해피 엔드」(감독 정지우)는 인터넷 홈페이지(www.happyend.com)를 통해 3가지를 시도했다. 영화에 썼던 소품 경매, 지분참여 공모, 성인용 예고편 제작. 결과는 셋 다 100% 성공이었다. 소품은 몇 시간 만에 다 팔려나갔고, 지분공모는 256명이 참여해 5일 만에 목표인 1억원을 채웠다. 배우 전도연의 전라연기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으로 만든 성인용 예고편은 개설 첫날 5만명이 조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해피 엔드」는 12월 관객이 가장 보고 싶은 영화가 됐다.
촬영중인 「반칙왕」(감독 김지운) 역시 15억원의 제작비중 1억원을 인터넷 포탈 사이트인 「인츠필름」을 통해 모았다. 내년초 제작에 들어갈 SF 무협로맨스 「천사몽」은 25억원중 10억원을 인터넷(www.digi_cat.com)을 통해 11월말부터 충당하고 있다. 그리고 투자자들에게는 사이버프로듀서 자격을 부여해 영화제작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했다. 인터넷 투자공모는 아직은 입장권을 미리 파는 형식의 홍보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점차 그 규모가 커지면서 영화자본의 한 갈래로 자리잡을 전망.
「네오무비」(www.neomovie.com)는 인터랙티브 영화 전문 제작사. 지난 6월 처음 만든 16㎜ 디지털 영화 「영 호프의 하루」(감독 조영호)는 15일 만에 30만명의 네티즌들이 접속했다. 이어 40분짜리 코믹공포물 「뱀파이어 블루」(감독 윤재구)를 만들었다. 네티즌들은 마치 TV의 「인생극장」처럼 세차례의 다른 선택을 통해 여덟가지의 다른 결말에 도달한다. 제작비라고 해야 1억~3억원. 인터넷극장이기도 한 「네오무비」는 내년에도 9편을 제작할 계획. 또 영화를 보다가 영화속 상품을 클릭하면 인터넷 쇼핑몰로 링크되는 세계 최초의 인터랙티브 CF 「밀레니엄 살인행진곡」(감독 조영호, 주연 최창민)도 만든다.
「해피엔드」의 명필름 심보경 실장의 말. 『영화와 인터넷의 사이가 너무나 가까워지고 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예측할 수가 없다. 마치 영화가 인터넷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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