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로 복역하다 최근 출소한 한 무기수가 참회의 장기기증에 나서 어수선한 세기말에 한줄기 빛을 던져주고 있다. 86년 살인죄로 수감됐다 올 5월 석가탄신일 특사로 출소한 윤성률(尹成律·42)씨는 『몸으로나마 내가 지은 죄를 씻겠다』며 자신의 장기를 신장병 환자에게 기증하기로 했다.윤씨가 장기기증을 결심하게 된 것은 동생에 대한 한없는 죄책감 때문. 86년 6월 술에 만취해 귀가한 윤씨는 동생과 말다툼하다 홧김에 칼을 휘둘러 동생을 숨지게 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제가 왜 그랬는지…』
윤씨의 수감후 생활은 동생에 대한 속죄와 참회의 시간이었다. 종교에 귀의해 신약과 구약성서를 1차례 필사(筆寫)했고 모범수로 인정도 받았지만 가슴속엔 항상 피흘리며 쓰러진 동생의 얼굴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복역중 장기기증에 관한 글을 읽은 윤씨는 『세상에 속죄하는 길은 죽은 동생을 대신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 뿐』이라고 결심했고 올 10월초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경기지역본부(0343-442-5353)」에 신장기증 의사를 밝혔다. 『동생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신청했어요. 돈도 힘도 없는 처지지만 육신으로나마 속죄하고 싶었습니다』
윤씨는 16일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22일 신장이식 수술을 받는다. 윤씨가 기증한 신장은 부산에 거주하는 만성 신장병 환자인 박모(46)씨에게 이식된다. 출소후 안양에 있는 산업자재 재활용업체에서 폐드럼통 세척·수리공으로 일하는 윤씨는 『13년전 살인사건으로 아내와 2자녀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홀어머니 밖에 없지만 이제 내가 지은 악업의 일부분이나마 씻을 수 있을 것 같아 가슴 한켠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신장을 기증받을 박씨의 부인 고정남(45)씨는 『남편이 새 생명을 얻게돼 너무나 감사하다』며 『보답하는 마음으로 광주에 사는 신장병 환자에게 내 장기를 기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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