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악재가 씨름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기술과 질서의 실종, 팀동료와의 대전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세가 바로 악재들이다.기술의 실종은 12일 끝난 99천하장사씨름대회를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뒤집기 오금당기기 호미걸이 등 화려한 기술은 사라지고 150㎏이상의 거구들이 판치는 힘싸움으로 전락한 듯한 양상이었다.
천하장사 2연패(連覇)를 달성한 김영현(23·LG)을 비롯, 이태현(23·현대) 등 32강에 오른 선수들이 구사한 기술을 보면 대부분 들배지기 잡치기 밀어치기 빗장걸이 덧걸이 등 6-7가지로 한정돼 있다. 특히 8강에 오른 선수중 김영현(158㎏) 박광덕(156㎏) 신봉민(153㎏) 김경수(153㎏) 등 4명은 150㎏을 상회하는 「비만선수」였다. 오죽하면 국내최장신인 217㎝ 158㎏의 체격으로 그동안 밀어치기가 전매특허였던 김영현까지 앞으로는 기술씨름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씨름판의 질서도 사라졌다. 지리한 샅바싸움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하면 서로 허리를 빳빳하게 세운채 경기를 진행하고 있어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은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화려한 기술의 구사가 어렵다.
담합에 가까운 봐주기는 이제는 모래판의 고질병이 된듯하다. 지난 천하장사대회에서도 그랬다. 팀동료인 청각장애인장사 윤석찬은 이태현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신봉민은 한판을 따내긴 했지만 들배지기를 하면서 중심을 뒤로 가져가며 은연중 이태현의 덧걸이를 유도한 인상을 주었다.
김영현은 150㎏대의 거구 박광덕을 두번이나 가볍게 들어 모래판에 메다꽂아 박광덕으로 하여금 겸연쩍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들에게서 분하다거나 아쉽다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동료선수가 우승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을까.
여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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