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미사를 마치고 이번 성탄절에 영세를 받을 세 분과 면담했다. 이들은 모두 나눔의 집 실업자센터를 운영하면서 만나게 된 분이다.40대 후반의 이씨는 오랫동안 우체국서 임시직으로 일하다 정리해고됐다. 그즈음 병치레를 하던 부인의 수술비로 모아둔 돈과 전세금을 모두 써버리고 보증금없이 월 15만원하는 셋방에서 병든 아내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키워야했다. 절망속에서 헤매다 실업자센터에서 소개한 생명의 숲 공공근로를 시작했고 지금은 나눔의집 가족들이 공동 창업한 협동조합에서 일하고있다. 월급은 80만원. 다른 수당이나 보너스는 없다. 그래도 불안한 공공근로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하다며 행복해한다.
송씨는 40대 초반으로 형과 함께 조그만 사업을 했었다. 하지만 부도가 나면서 집을 잃었고 은행에는 거래불량자로 등록돼 융자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업을 했기 때문에 기술이 없었고 새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일당이 많은 생명의 숲 공공근로에 참여하면서 중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과 부인, 세 가족이 근근히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수목원에서 포천군 주민만 쓴다느니, 내년에는 공공근로 일자리가 절반으로 준다느니하는 이야기로 크게 위축돼있다.
부인, 딸 등 세가족이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백씨는 미장일을 했었다. 건설경기가 약간 회복됐다고는 하나 나이가 많아 불러주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의욕과 노동력이 있는데 현장에서는 30∼40대만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 하고있는 공공근로마저 못하게되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백씨.
이들이 속한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이 지난 10월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2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비정규직 저소득 노동자의 실업률과 빈곤은 매우 심각했다. 취업률은 18%를 약간 넘었다. 40%는 공공근로에 투입됐고, 40%는 실업상태에 놓여있었다. 1년 이상 장기실업상태에 있는 사람이 38%나 됐다. 언론에서는 경기가 회복돼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느니, 내년도 실업률이 4%대로 떨어질 것이라느니 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주변주민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도 1년 이상 장기실업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도 실업 예산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장기실업자를 위한 대책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선적으로 하게되는 생각은 장기 실업자를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노력이 뒤따라야할 것이다.
또 한가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집행하기 위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그래서 내년도 실업률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오히려 올해보다 4%나 삭감했다.
바다 한 가운데 나룻배가 있고 나룻배 한쪽 끝에는 돌탑이, 다른 한쪽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있는 화가 이철수의 판화가 있다. 배는 수평을 유지한 채 평화롭게 바다에 떠있고 그 아래로는 「새에게도 무게가 있습니다」는 화가의 글이 적혀있다. 우리 사회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예수의 그 마음을 회복하지 않는 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새 천년으로 가는 이번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그래서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김홍일 성공회 신부·노원 나눔의 집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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