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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소리는 든든하고 위는 생기발랄

입력
1999.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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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는 중요한 악기다. 그러나 음역이 좁은데다 불기 힘들어서 다양한 표현을 요구하는 창작음악에는 잘 맞지않아 점차 쇠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40여년 피리 인생을 살아온 연주자 정재국(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은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전국의 피리연주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여러 차례 실험 끝에 피리를 개량했다. 그것을 선보이는 음악회가 13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있었다.이번 개량의 핵심은 음역을 확장한 것이다. 기존 향피리는 위로 5도 높이고 대피리는 아래로 6도 내림으로써 1 옥타브 반에 그치던 기존 피리 음역을 2 옥타브 반으로 넓혔다. 전통악기 중 저음부를 담당하는 관악기가 없는 것은 창작음악 연주의 한계로 일찍부터 지적돼왔다.

기존 대피리는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본래 한 뼘 반 밖에 안되는 향피리를 굵고 길게 만들었으나 한 옥타브가 채 안되는 음역 때문에 별로 쓰이지 않던 것을 이번에 음역을 더 넓혀 쓸모있게 개선했다. 이로써 저음(개량 대피리) 중음(기존 향피리) 고음(개량향피리)의 피리합주가 가능해졌다. 또 높은 음을 내기 쉽게 향피리에 배음(倍音) 키(누름쇠)를 달고 대피리도 손가락이 잘 안닿는 아래 쪽에 키를 달아 연주하기 쉽게 만들면서 그동안 쓰지않던 새끼손가락까지 다 쓰도록 했다.

음악회는 개량피리와 기존 피리를 함께 사용해서 피리의 합주 능력을 보여주는 곡들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전통음악 「도드리」와 창작음악으로 황병기 이준호 김영재 김철호 백대웅의 작품을 연주했다.

개량의 효과는 일단 소리가 풍성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드리」를 대피리의 저음 밑도드리, 향피리의 밑도드리, 개량 향피리의 웃도드리가 함께 어울린 피리 3중주 형태로 연주하니, 아래는 든든하고 위는 훨씬 생기발랄한 소리가 나왔다. 피리 앙상블의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창작음악 다섯 곡 중 이준호의 「산노을」, 김철호의 「바람 Ⅲ」, 김영재의 「개량피리를 위한 합주곡 1번 「가을 피리」는 초연이었다. 이 세 작품은 개량 피리를 기존 피리와 함께 사용함으로써 화성적 효과를 보여주는 데 치중했을 뿐, 음악 어법에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새 악기를 위해 좀 더 진취적인 새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의 과제라 하겠다. 새로운 주법의 개발도 숙제다. 개량 대피리는 음역이 넓어진 대신 피리 본래의 단단하고 꿋꿋한 소리가 성글고 펑퍼짐해졌다. 대피리가 저음악기인 이상 아주 꽉 찬 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주법으로 보완할 필요는 있겠다. 개량 대피리의 등장으로 저음을 보강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소득이라 하겠다.

이번 피리 개량은 그동안 침체됐던 피리음악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널리 쓰이고 거기에 맞는 좋은 음악이 많이 작곡되어 창작음악 발달에 지렛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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