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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정상 더 오를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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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정상 더 오를곳이 없다"

입력
1999.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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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1977년 9월15일 낮 12시50분. 77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 베이스캠프 무전기에서 고상돈대원의 일성이 메아리쳤다. 베이스캠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영도등반대장과 동료대원들의 눈에는 어느덧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새벽 4시30분 해발 8,500㎙의 공격캠프를 출발해 8시간20분간의 사투를 벌였고 7월12일 원정대가 장도에 오른지 76일만이었다. 74년 창간 20주년을 맞은 한국일보사는 기념사업으로 에베레스트등정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대한산악연맹과 함께 4년간 빈틈없는 작업을 해왔다.

4년간 흘린 피와 땀이 결실을 가져왔다. 최고봉 해발 8,848㎙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한국인이 우뚝 선 것이다. 남극, 북극과 함께 지구 3극점중 하나인 에베레스트는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경이 53년 첫 등정에 성공했고 한국등반대의 정상등정은 8번째 쾌거였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등반장비의 열악함을 딛고 일궈낸 정상등정은 당시의 기사에 절절하게 전한다. 이제는 누렇게 색이 바랜 기사 첫 머리는 「민족의 경사였다」로 시작해 「장하다!」 「드디어 해냈구나!」 「만세!」 등 희열에 들뜬 감탄사가 잇따랐다. 상황도 극적이었다.

1차 공격조가 정상 98㎙를 앞두고 악천후와 산소부족으로 퇴각해 온 국민의 가슴을 한차례 졸인 뒤였고 이날 새벽 최후의 공격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결과를 전혀 예측할수 없었다. 카트만두 비나야 통신원은 한국시간으로 오전 7시40분 「오늘도 소식이 없다.

내일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며 교신을 끊었는데 불과 5분만에 「긴급연락, 편집국장과 교신요망, 성공했다!」는 급보가 날아온 것이다. 30분뒤 「한국이 지구의 정상에 올랐다」는 기사가 타전됐다.

당시 제주시에서 매일밤 촛불과 향을 피워놓고 자식의 성공을 기원하던 고상돈대원의 어머니는 등정성공 소식에 『오늘 죽어도 한이 없다』며 눈물과 기쁨으로 범벅이 됐고 이튿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쾌거를 알게 된 독자들은 편집국으로 빗발치는 축하전화를 걸어왔다.

감동은 계속됐다. 당시 한국일보 체육부차장으로 동행취재했던 이태영씨(58)는 베이스캠프에서 카트만두까지 도보로, 이후 비행기를 몇차례 갈아타면서 7일만에 서울에 도착, 다시 한번 전국을 생생한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한국일보 1면을 장식한 당시의 사진은 「이 오연(傲然)한 절대(絶對)의 절정(絶頂). 우리가 드디어 여기 올라와 서 있다고, 하늘의 문(門)을 두들기며 소리쳐라 장(壯)한 사람들아!」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인의 드높은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고상돈씨는 2년뒤인 79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다 빙벽에서 추락, 31세로 타계해 「산을 보면 동경하고, 산에 동화된 산악인」이 됐다. 97년 등정 20주년을 맞아 사진전과 힐러리경 초청 강연회, 기념비가 건립됐고 세기가 바뀌어도 「고상돈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장래준기자

ra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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