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부터 춤판은 1시간 짜리 대작이 줄을 이었다. 공연예술 지원금을 받은 작품들이다. 지난 주 이 지면을 통해 그 돈을 받은 작품들을 비판했다. 다시 한 번, 그 뒤에 공연된 다른 작품들을 점검하려 한다.김매자의 「하늘의 눈-해를 부르는 춤」(10·1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댄스컴퍼니조박의 「히포크라테스의 침묵」(11·12일 문예회관 대극장), 김복희무용단의 「천형, 그 생명의 수레」(4-6일 문예회관 대극장), 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의 「유랑」(8·9일 문예회관 대극장)을 봤다. 김매자와 조박은 국고에서 긴급수혈된 특별지원금(김매자 5,000만원 조박 2,000만원), 다른 두 작품은 문예진흥기금의 창작활성화 지원금(김복희 7,000만원 박명숙 6,000만원)을 받았다. 네 편 중 김매자의 춤을 수작으로 꼽고 싶다. 나머지 세 편은 아쉽거나 실망스러웠다.
김매자 「하늘의 눈」은 군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역동적이고 아름다웠다. 창무회 춤꾼들의 몸짓은 살풀이 승무 탈춤 등 전통춤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지만, 매우 현대적인 것이었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는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설득력있게 성취됐다. 움직임은 많지 않았지만 강력했다. 느림과 멈춤의 미학이라 할까.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에너지의 흐름은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매자의 솔로는 절제된 군무에서 나오는 집중도를 흩어버리는 감이 없지 않았다.
그가 춤꾼의 끼를 맘껏 풀어내는 것은 보기에 즐거웠지만, 조화와 균형에서 군무와 잘 어울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이 작품은 섬광-혼륜-조율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있다. 태초의 어둠과 혼돈에서 빛이 몸을 일으켜 생명의 기운이 우주를 감싸는 웅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음악은 춤을 더욱 빛냈다. 문묘제례악의 응안지악, 진도 씻김굿, 일본 전통극 노(能)의 쯔즈미(작은 장구처럼 생긴 타악기) 구음이 가세한 시나위를 차례로 쓴 것은 아주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댄스컴퍼니조박의 「히포크라테스의 침묵」은 실망스러웠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소재로 생명경시 풍조를 비판한 이 작품은 춤이라기보다 연극에 가까웠다. 연극이 춤을 눌러 춤이 잘 보이지 않았고 극적 흐름도 어수선했다. 안무가 박호빈은 연극적 요소를 춤에 도입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춤의 고유 언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김복희무용단의 「천형-그 생명의 수레」는 「노틀담의 꼽추」를 남사당의 애환으로 번안했다. 이 작품에서 안무자 김복희의 춤 언어는 다양하지 못하며줄거리의 전개도 느슨한 편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박명숙이 안무한 서울현대무용단의 「유랑」은 러시아 한인의 유랑사를 다룬 것으로 열심히 만든 표가 난다. 좀 더 긴밀하게 다듬으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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