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의 한국정치는 오욕의 백년이었다. 그 중 반세기는 주권상실에 따라 식민지로 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한국정치는 사실상 반세기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반세기간의 한국정치를 돌아다보자면 불행히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더 지배적이다. 우선 분단에 따른 근대적 통일민족국가의 미완성이다. 특히 외세에 의한 해방이 가져다 준 결과인 분단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야기한 바 있고 그 이후에도 남북한 모두에 있어서 국가안보라는 이름하에 정치적 억압의 기초가 되어 오고 있다.
둘째로 권위주의 정치이다. 사실 지난 반세기의 한국정치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암울한 독재의 그림자이다. 물론 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있으나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민주주의 조차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3권분립이 아직도 제도화하지 못했고 사상의 자유 등이 제약을 받고 있으며 정당은 1인 보스에 의해 좌우되는 사당정치에 불과하다.
셋째, 분단의 결과로서 서구와 같은 진보 대 보수의 정책대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산업화의 결과로 빠르게 계급, 계층적으로 분화하고 이들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표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조정이라는 원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지역주의다. 주목할 점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잠재적 형태로 존재했던 지역주의가 아이로니컬하게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것의 목록표는 부정적인 것에 비해 짧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성장, 특히 강한 사회·시민운동의 존재이다. 이같은 존재는 결국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지금도 민주화의 주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사실 많은 외국 학자들이 이같은 강한 사회, 시민운동의 존재 때문에 한국이 일본보다도 미래가 밝고 어쩌면 많은 선진국들보다도 희망이 있다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강한 사회운동의 존재는 군사독재의 억압의 결과라는 점에서 군사독재는 엉뚱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를 한 셈이다. 둘째로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그나마 지금의 수준으로라도 이루어낸 민주화이다. 한국정치의 부정적인 면이 권위주의적 정치라면서 동시에 민주화를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아직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걸음마 단계이지만, 이 정도의 민주주의라도 획득한 것은 긍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손호철(孫浩哲)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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