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그 옛날 하나님이 유대 민족의 성조(聖祖)인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 불러내 정착시켰다는 축복의 땅.성경 5,000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 「홀리 랜드」(성지·聖地) 이스라엘은 뉴 밀레니엄(새 천년)을 앞두고 밀려드는 세계인을 맞기에 분주하다. 고풍스런 유적과 첨단 빌딩, 교회와 모스크, 키파를 쓴 유대인과 두건 차림의 아랍인, 나귀와 최고급 승용차 등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않은 일상사를 넉넉한 가슴속에 안고 새 천년 준비에 바쁘다.
예수 탄생을 밀레니엄의 기준으로 할때 2000년은 세번째. 많은 사람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인 태평양 동쪽 끝 섬나라인 키리바시에서 뉴 밀레니엄이 시작될 것으로 믿고 있지만 진정한 밀레니엄 정신은 예수가 태어나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한 이스라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미 그 뜻을 새기려는 순례객의 발걸음이 끊어지지않고 있다.
밀레니엄 축제의 절정은 성탄절로부터 일주일간.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과 성장기를 보낸 나자렛, 각종 이적을 행한 갈릴리호 주변, 십자가에 못박힌 예루살렘 등에서 성경 낭송및 전시, 기념미사, 화해를 위한 인간의 띠잇기 등 수십가지의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세계인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촛불 켜기」행사가 31일 나자렛을 밝히면 힘들고 고된 「천년」이 저물고 축제는 새 천년맞이로 넘어간다.
축제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로 이스라엘의 주요 호텔은 거의 매진 상태. 이스라엘 관광국의 수잔 클라게스브룬 아시아 담당관은 『매년 250만명의 관광객이 이스라엘을 찾아왔으나 올해는 새 천년맞이를 전후해 수십만이, 2000년에는 300만~500만명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이 정한 밀레니엄의 정신은 세계평화와 환경보전이다. 민족과 종교간의 증오와 갈등이 첨예한 곳답게 「평화」를 갈구하는 목소리가 그만큼 절박하기때문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가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지역엔 새 천년의 화두로 떠오른 「문명 충돌」의 광기가 서려 있지만 축제를 앞둔 지금 전혀 그런 징후를 느낄 수 없다.
아랍, 크리스천, 아르메니아, 유대인 지역 등 4개 권역으로 나뉜 예루살렘성의 고난의 길(비아 돌로로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간 그 길을 따라 유대인이 관광객을 안내하고 아랍 상인들이 기독교 관련 기념품을 팔고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무장 경찰의 얼굴도 밝다. 그저 잘 섞인 물감처럼 자연스럽고 평화스런 모습이다.
특이한 곳은 베들레헴. 중동 평화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의 자치지역으로 편입된 이곳은 이스라엘 무장경찰 대신 팔레스타인 경찰이 밀려드는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마굿간」티가 나는 지저분한 거리는 흩날리는 흙먼지 위로 아스팔트가 덮히고 밀레니엄 관광객 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임시정부 수반은 이미 4일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앞에서 「베들레헴 2000년」선포식을 가졌다.
이스라엘에서는 뉴 밀레니엄 준비가 한창이지만 유대인이 쓰는 유대력으로는 올해가 5760년이고 아랍인의 이슬람역으로는 1420년이다. 그들에게 2000년은 뉴 밀레니엄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유대인과 아랍인은 「밀레니엄 특수」를 위해 협력을 아끼지않고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 관광국의 벤야민 니나이 조정관은 『관광특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때문에 서로 다른 종교적 입장을 지녔더라도 잘 협조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달 나사렛의 수태고지 성당 바로 앞에 이슬람 사원 기공식을 갖는 바람에 양측간에 갈등이 빚어졌지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게 현지인들의 이야기다.
새 천년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라면 이스라엘은 종교와 민족을 불문하고 밀레니엄을 맞기에는 둘도 없는 곳이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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