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시장에서 질나쁜 제품은 살아 남을 수 없다. 새로운 상품이 숨돌릴 새 없이 등장하고, 소비자가 외면하는 제품은 곧바로 도태된다.정치시장은 어떠한가. 정당지도자가 제품의 생사와 진퇴를 결정한다. 상품의 기본요건조차 갖추지 못해도 지역 맹주가 만들어 놓은 파행적 독과점 구조에서 멀쩡히 장수한다.
우리나라만큼 정치인의 물갈이 비율이 높은 곳도 흔치 않다. 9대 국회 이후 초선의 원내 진입률이 3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도표 참조) 시쳇말로 새로운 피가 끊임없이 수혈된 셈이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제자리다. 새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지금도 정치는 전근대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정치권에 입문한 신진기예들도 보스의 손가락 하나에 춤을 추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권 충원은 유권자의 시장검증을 통해 이뤄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보스의 밀실검증이 충원의 주 루트가 돼 있다. 국민에 의한 물갈이가 아닌, 위로부터의 정략적 물갈이가 반복되고 있다. 새롭게 영입된 인물 대부분이 1회용으로 전락하는 연유다.
제도가 달라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선진 외국은 리크루트 구조가 철저히 상향식이다. 독일은 정치지망생들이 대학시절부터 각종 하위선거에 참여하며 청년당원으로 활동한다. 상시 중앙당 구조가 아닌 선거정당 구조인 미국 역시 정치입문 과정에서부터 예비선거 등을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과 검증을 받게 돼 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외부영입이 있을 수 없다.
정당 만들기와 부수기를 밥먹듯 하는 형편에 외국의 경우를 기준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당 자체의 정체성과 안정성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 인적개혁을 논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치는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지금처럼 특정지역 보스가 공천만 하면 당선이 보장되는 구도가 이어지는 한 정치개혁은 무망하다. 평소에는 정치를 혐오하다가 때가 되면 지역맹주에 표를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정치는 우리 모두의 치부(恥部)로 남을 수밖에 없다.
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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