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외교관의 첩보 행위를 둘러싸고 냉전시대를 방불하는 「스파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미국은 8일 「포기 버텀」(Foggy Bottom)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워싱턴 DC의 국무부 건물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러시아 외교관 1명에 대해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는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러시아 남자 외교관 1명이 국무부 건물에 설치된 도청장치를 이용하려 했으며 이 장치를 설치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리도 『미국 정부가 문제의 외교관을 기피인물(Persona Non-Grata)로 규정해 이번 주말까지 미국을 떠나도록 명령했다』면서 토머스 피커링 국무차관이 8일 러시아 대사관에 이같은 사실을 공식 통보했다고 확인했다.
러시아 외교관이 추방되기는 94년 2월 중앙정보국(CIA)내의 러시아 간첩 알드리치 에임스 사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지난달 30일 모스크바 주재 미대사관 정무부의 체리 리버나이트(33·여) 2등서기관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 추방한지 8일만에 일어났다.
FSB는 지난달 30일 『리버나이트가 29일 밤 러시아인으로부터 국가기밀로 분류된 군사·전략적 내용의 서류를 건네받는 현장에서 체포됐다』며 『조사결과 그녀는 CIA 요원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FSB는 미국 참사관의 입회하에 리버나이트에게 외교관의 지위에 부적합한 행동에 관해 강력한 항의문을 낭독한뒤 석방했다.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제임스 콜린스 미국대사와 고위직 외교관을 불러 공식항의 각서를 전달했다. 리버나이트 역시 기피인물로 지정돼 추방됐다.
이에 앞서 그레그 스미스 미 해군사령관은 지난달 29일 대니얼 킹(40) 하사관이 94년 러시아에 포섭돼 미국의 군사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첩보행위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있었으나 5년만에 보복적 성격의 공방이 빚어진 것은 최근 극도로 나빠진 양국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게 대체적 분석이다.
양국 관계는 코소보 사태, 체첸 전쟁, 핵무기 감축문제, 탄도요격미사일(ABM) 협정 개정문제, 국제통화기금(IMF)의 러시아 자금지원 연기 등을 둘러싸고 급속히 냉각돼왔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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