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자료 수집가 최웅규씨의 60-70년대 수집품과 90년대 미디어 작가들의 작품.언뜻 떠올리면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이 「제품」과 「작품」들이 「시각문화」 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한 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성곡미술관에서 밀레니엄 기획 및 개관 4주년 기념전으로 열리고 있는 「시각문화-세기의 전환전」(11월 18일-2000년 1월 26일).
세대간 존재하는 문화의 단절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던듯, 미술관측은 시기별로 전시 장소 자체를 아예 별관(50-70년대)과 본관(80년대-2000년)으로 나누었다.
별관엔 포스터, 책 등 시각매체들이 복덕방, 만화방, DJ음악다방, 초등학교 교실, 사진관 등으로 재현된 과거의 풍경들. 1층의 하루방 파고다 남대문 청자를 파는 담배가게를 겸한 복덕방, 2층 60-70년대 영화포스터들이 더덕더덕 붙은 음악다실, 3층 60-70년대 교실들은 헐벗음 속에서도 낭만을 잃지않던 옛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분명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과거의 현장을 「체험」 하는 일은 우리의 감성적인 취향을 부추기고, 과거를 곱씹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한 개인의 수집품만으로 단순하게 꾸며진 이러한 「과거의 일상」 들이 미술영역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신선했다.
본관은 20세기 미디어의 총아인 TV를 소재로 한 매체미술과 첨단 멀티미디어 장비를 이용한 방(게임방, 테크노방, 동영상방, 미디어방…)들의 행진. 흑백에서 컬러, 로터리 채널에서 리모콘, 가구형 TV에서 박스형 TV까지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정리된 TV 변천사가 미디어작가인 백남준, 김구림, 성능경, 박현기, 안창홍, 이동기, 안윤모 등 작품들과 함께 80-90년대 우리 시각문화의 단면을 역시 「체험」하도록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장 본관과 별관은 화상통신망으로 연결, 관객들이 실시간 서로 다른 공간의 현장을 접속할 수도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 3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할 정도로 성곡미술관으로선 올 최대의 야심찬 기획전. 7일 현재 8,000여명의 관객을 동원, 소재와 물량주의의 전시답게 양적으론 성공한 전시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계는 아쉬운 눈으로 전시회를 바라보고 있다. 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씨는 『아이디어는 반짝였지만 성곡미술관의 또한번의 뒷심 부족을 드러낸 전시회』 라면서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모아놓았다는 느낌밖에는 없다. 왜 끝없이 시각이미지는 변하는 것인지, 과거의 이미지는 왜 우리에게 촌스럽게 다가오는 것인지, 이미지와 속도, 시간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명료한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우리처럼 빠른 시간에 동시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역사와 미술, 시각이미지를 연관시켜 이를 설명하는 작업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사색하는 큐레이팅이 필요하다. 97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김진송씨가 보여주었던 해방 후 한국미술과 시각문화 전시회가 떠올려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글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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