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종)를 대학으로 개편하려는 「국립예술대학교 설치법」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 예술계 대학의 반발이 거세다. 예종은 이번 기회에 숙원을 이루려고 필사적이다. 양측은 연일 성명전을 펼치는 한편 지난 1·2일 각각 공연 형태로 시위 맞대결을 벌였다. 11월 초 여야 3당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은 지난 26일 국회 문화관광위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일반대학 교수들이 회의장에서 항의농성을 벌이자 보류된 상태다.법안의 요지는 예종을 대학으로 변경해 비학위과정과 더불어 실기 관련 석·박사학위 과정을 만들고 유치원에서 고교에 이르는 부속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현재 예종은 교육법상 정식 대학이 아닌 각종학교로 묶여있고 각종학교는 학사에 준하는 학위밖에 줄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예종은 음악원·무용원·연극원·영상원·미술원·전통예술원의 6개 원에 예술사(학사과정)·예술전문사(석사과정) 과정을 두고있는 국립대학이다. 영문 표기는 분명 「국립(National) 예술대」로 되어있다. 예종측은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졸업생이 유학이나 사회진출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명실상부한 지위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예종측이 요구하는 학위는 MFA·DFA·DMA 등 예술실기 전문 석·박사학위로 현행 교육법에 없는 것들이다. 반면 일반 대학 예술계는 『예종의 설립 취지는 학위를 떠나 예술 실기 전문가를 키우는 것인데, 이제 와서 학위를 요구하는 것은 예종 교육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자 학벌 만능의 병폐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왜 반대하는가. 「예술교육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명분 뒤에 실은 절박한 위기감이 감춰져있다. 예종은 현재 국내 최고 시설과 교수진에 일반대학 예술계보다 훨씬 자유로운 학사운영을 하고 있다. 정식 학위까지 준다면 학생들이 예종에 몰릴 것은 뻔하다, 다른 대학은 학생을 다 뺏길 판이라는 것이다. 예종은 KAIST의 등장으로 서울대 공대가 자극을 받아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했듯 예종이 다른 예술계 대학의 개혁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총선을 앞둔 국회가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장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근시안적 계산이 아니라 예술교육의 왜곡된 틀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지금의 일반대학 예술교육은 이론과 실기 양쪽에 어정쩡하게 걸쳐있어 예술가를 키워내기에 부적합하다. 바이올린의 장영주, 발레의 강수진 등 세계적 예술가를 길러낸 것은 외국 교육이다.
그 점에서 『일반대학 예술계는 학자와 교사를, 예종 같은 실기전문 교육기관은 프로 예술가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구분하라. 그것만이 양쪽 다 살리고 예술교육을 정상화하는 방법』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매년 수천명씩 예술계 대학생이 졸업해 대부분 실업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예술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백년대계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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