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의 22번 염색체의 염기서열이 완전히 밝혀졌다. 인간의 유전을 결정하는 23쌍의 염색체 중 22번의 유전자암호가 풀린 것. 22번 염색체는 특히 관련 질병이 많아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종결될 2003년이면 인간 생체 내에서 유용한 기능을 하는 10만개 유전자를 비롯한 모든 염기서열의 지도가 그려질 전망이다. 3,000메가바이트, 책 수천권 분량의 이 정보를 밝히면 어떻게 사람이 사람 모양으로 생겨나는지, 어떤 유전자변이로 인해 질병이 생기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도를 확보했다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포스트 게놈시대」가 다가온다.■유전자의 기능 분석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밝혀지면 그 다음은 이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갖는가가 관심사다. 이를 「기능유전체연구」라 한다. 이를 위한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DNA칩이 등장했다. 9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이 처음 가로 세로 1㎝ 안에 2,000-3,000개의 유전자가 붙은 칩을 만든 후 어피매트릭스, 나노젠등 실리콘밸리의 벤처회사가 나섰다.
이러한 칩을 이용하면 수백-수만개의 유전자가 어떤 질병에 관련되는지, 또는 어떤 돌연변이가 생기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하듯 하나의 유전자를 조작, 쥐에 발현시켜 봐서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를 살펴보는 방식대로 한다면 수년이 걸릴 일이 단 며칠만에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기능유전체연구에 앞서가기 위해선 DNA칩을 만드는 재료 즉 염기서열이 밝혀진 유전자를 많이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생명정보는 누구의 것?
그러나 이같은 생명정보가 질병치료로 직결되면서 게놈연구는 제약회사, 사설연구소등의 산업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9-10월 일본 헬릭스연구소와 미국 셀레라 게노믹사는 각각 인간 유전자 6,000여개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미국 벤처회사 인사이트사는 하나의 단백질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유전자의 일부 조각까지 모두 포함해 120만개의 특허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쯤되고 보니 국제공조와 정보공유라는 게놈프로젝트 초기의 기치는 무색하게 됐다. 현재 셀레나 게노믹스사는 미 국립보건원의 유전자은행에 있는 유전자정보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확보, 감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일등의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매년 게놈연구에 1조이상을 투입해 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에 비하면 특허건수가 극히 적다. 수년-수십년 뒤 유전자치료가 일반화하면 우리는 막대한 유전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 판이다.
■비교유전학
결국 우리같은 후발주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게놈을 횡적으로 연구하는 일이다. 서구인을 중심으로 밝혀지고 있는 유전자정보를 다른 나라의 유전자와 비교하는 「비교유전학」이 그것이다. 인종마다 특이한 유전자를 비교하는 일은 특정국가의 사람들에게 많은 질병유전자를 찾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결국 한국인에게 많이 발병하는 질환 관련유전자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생명공학연구소 이대실박사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로 봐서 산업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생물 유전자』라고 덧붙인다. 인간 유전자 분석에 드는 돈의 100분의 1만 들여도 실용화가 가능한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게놈프로젝트란? 유전자 염기서열 알아내 지도화 하는 것
게놈(Genome)이란 생물체의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DNA는 인간의 세포핵에 있는 23쌍의 염색체에 나뉘어 담겨있다. DNA를 구성하는 염기는 아데닌(A) 티닌(T) 구아민(G) 시토신(C) 4종류. 염색체 속 DNA를 모두 풀어놓으면 그 길이가 1.8㎙쯤 되는데 여기 들어가는 염기는 30억개정도다. 하나의 유전자는 염기쌍 수천개가 조합돼 형성되며 인간생체에서 기능을 갖는 유전자는 10만개정도가 된다. 이 유전자에 따라 키·피부색등이 결정되며 염기배열의 돌연변이에 따라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까지 그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는 2%에 불과하다.
이같은 사람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완벽하게 알아내 지도화하는 것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다. 90년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IH)는 유전자 결함으로 생기는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공동연구로 처음 시작했다.
시작 당시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비난도 있었으나 각종 난치병의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측면이 강조되면서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연구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제약회사등 상업적 이익을 노리는 연구소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면서 2005년 유전자지도를 완성하겠다는 당초 목표는 2003년으로 앞당겨졌다. 2030년이면 모든 유전자가 갖고 있는 기능과 역할이 완벽하게 파악될 전망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