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칼바람이 불던 98년 2월, 드라마 한편이 시청자 곁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시절을 반추하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도로 제작된 MBC의 「육남매」(최성실 극본, 이관희 연출)였다.이 드라마는 당초 수목 미니시리즈 16부작으로 기획됐으나 시청자 반응이 좋자 시추에이션 드라마로 전환돼 1년10개월이나 장기 방송해왔다. 17일 100회 방송으로 종영할 「육남매」 마지막 방송분 촬영이 최근 끝났다. 98년 2월 4일 첫회 「막내가 태어난 날」 에서 100회 「새로운 세계로」 까지 IMF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던 드라마였다.
「육남매」는 경제재건 운동이 한창이던 62-66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산업화 바람이 한창 불던 서울 영등포의 한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오랜만에 TV에 복귀한 장미희는 강인한 어머니상을 생생하게 표출, 역시 대스타라는 호평을 받았다, 홀로 된 어머니 장미희가 육남매를 키우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상황은 IMF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극중 그녀가 떡장사로 나와 한 『떡 사세요』 라는 대사는 개그우먼 이경실이 코미디 프로에서 『똑 사세요』 로 패러디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육남매로 나오는 아역들의 열연도 눈길을 끌었다. 막내딸로 나오는 남희역은 1회 출연때 생후 45일밖에 안된 남자아이 김웅희군이었다. 김군은 머리를 위로 묶어 시청자들을 감쪽같이 여아인 것처럼 속였다. 김군은 회당 20만원을 출연료를 받아 100회까지 2,000만원의 고소득(?)을 올렸다. 또 드라마 전반부에 나왔다 중반부에 퇴진한 김정현의 실제 모델이 김근태 국민회의 의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낳기도 했다. 김의원은 「육남매」 촬영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장미희의 문칸방에 세들어 온 운동권 학생으로, 육남매에게 정신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그려졌다.
이 드라마에는 지금은 잊혀진 풍경들이 복원되기도 했다. 경기 벽제 야외세트장에는 60년대 초반의 미장원 시장터 술집 공장등이 재현돼 「그때를 아십니까」 를 방불케했다. 또 「육남매」 는 이후 방송된 SBS 「은실이」 MBC「왕초」 「국희」등 시대극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만 CATV 「TZU 문화중심(文化中心)」은 방송도중 「육남매」 50회분을 수입, 현재 대만에서 방송하고 있다. TZU문화중심은 「육남매」 출연진을 대만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시청률은 「육남매」 가 IMF 드라마였음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IMF의 사태가 심각한 방송 초중반까지는 20-3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올들어 IMF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시청률을 10%대로 하락한 것.
60년대 가난했던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잔잔한 감동과 훈훈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만으로도 「육남매」는 의미있는 드라마였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장미희 "8년만의 드라마 복귀, 힘들었지만 보람 커"
8년만의 드라마 복귀였다. 브라운관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가볍고 삶의 진솔함이 없는 트렌디 드라마가 범람해서 드라마 출연을 꺼렸을 뿐이었다. 『「육남매」의 기획서와 1-2회 대본을 보고 우리네 따뜻한 삶을 다룬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에 기꺼이 출연에 응했죠. 장기방송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주저하지 않았어요』
100회를 이어나가는 동안 장미희(42)는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각종 행상역을 하다보니 촬영 중 아이를 들쳐업고 무거운 물건을 드는 장면을 하루종일 연기해야했다. 『아역들이 많아 NG가 자주 나 무거운 떡을 들고 10여차례 똑같은 장면을 촬영할 때도 있었어요』
연기자외에 명지대 사회교육원 연극영화과 주임교수로, 강의도 병행해야했다. 1주일중 사흘은 대학에 나가 강의하는 장미희는 『드라마는 사회적 영향이 크므로 사람들에게 감동과 따뜻한 위안을 주어야한다』 고 주장했다.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출연하겠다는 장미희,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와 만날지 기대된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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