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 전검찰총장이 마침내 검찰사에 유례없는 불행을 맞았다. 숱한 전·현직 장관은 물론 전직 대통령까지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파란많은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그러나 법질서 수호와 공직사정을 책임진 검찰총수가 스스로 법을 어기고 공직기강을 허문 과오를 저질러 사법처리되는 사태는 더 없이 참담한 비극으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김 전총장의 비운이 정치적 격변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한층 욕된 것이다. 시대상황을 탓할 여지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불행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들도 결코 개인의 과오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의 비극적 행로에 이런저런 이해로 얽힌 이들과 특히 그의 입신출세를 도운 역대 권력은 세월과 세상의 어긋남없는 분별력에 몸을 떨어야 마땅하다.
평검사 김태정은 본분에 충실한 유능한 공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출신지역때문인지 검찰의 변방을 떠돌다가 5공초 검찰수뇌부의 「탕평책」에 따라 검찰주류에 발탁, 능력과 사명을 다했다.
그뒤 문민정부들어 검찰을 뒤흔든 물갈이와 정략적 사정 드라이브에 따라 일약 사정주역으로 떠올라 검찰총장에 까지 올랐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을 때 그의 처신이 주목됐지만 연고를 중시한 권력의 신임에 힘입어 검찰개혁과 정·재계 사정의 막중한 책무를 다시 맡았고, 소임에 충실한듯 보였다. 그러나 법조비리사건과 항명파동을 거치면서 이미 검찰내부에서 정당성과 권위가 손상됐다는 평가였고, 역대 총장등 검찰원로들이 용퇴를 권고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권력의 재신임에 물러날 기회를 놓치고 장관에 올랐다가 뜻밖에 낙마했다. 그리고 어느 시절 어떤 검찰총장부부도 피했을 분별없는 처신이 뒤늦게 드러나 끝내 오늘의 오욕을 맞았다.
특히 그는 옷로비 은폐의혹에 거듭 구차한 변명으로 주변을 크게 실망시켰다. 지금와서 그의 어떤 해명도, 정권실세들과 가깝다는 신동아그룹 로비스트 박시언씨와 공사를 가리지 않고 얽혀 지낸 그릇된 처신을 가릴 순 없다고 본다.
이미 나락에 빠진 개인의 인격을 매도할 의도는 결코 없다. 다만 영욕의 극단을 오간 그의 행로를 되돌아보고, 검찰구성원을 비롯한 공직자들과 권력이 오직 본분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 바랄 뿐이다.
국정과 민심을 어지럽히고 권력까지 위기로 몰고간 김태정씨의 비극은 국정을 책임진 모든 이들에게 진지한 반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 특히 검찰은 모든 국민적 의혹을 해소, 민심을 위로하고 신뢰를 되찾도록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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