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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현지화'와 재외동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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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현지화'와 재외동포법

입력
1999.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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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이 지난달 마닐라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든 교민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신문들은 이 말을 교민들에게 「현지화」를 당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지당한 얘기다. 어떤 동기로든 생활터전을 옮겼으면 새 거주지 정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이 옳다. 만약 이들 가운데 고국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실패한 이민일 것이다. 김대통령의 얘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한 추악한 기업인의 외화밀반출사건 처리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로비극 시비는 더욱 이같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을 「미주사회에서 성공한 기업인」이라고 밝힌 한국계 미국인이 바로 이 기업인을 위한 로비스트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이 왜 하필 거액의 외화를 불법으로 해외에 도피시킨 혐의를 받는 기업의 부회장으로 취직했을까. 이 사람은 검찰에 한번 불려가 조사를 받은후 자신은 『미국시민이기 때문에 다시는 검찰수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미국시민임을 주장하기에 앞서 그는 불법 로비극의 당사자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입국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나, 신동아그룹 부회장 취업에 불법소지는 없는지 의심스럽다. 사건의 당사자이면서 「나는 미국시민권자요」라며 수사를 기피하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적지않은 식자들이 재외동포법 제정을 반대했다. 득이 될 만하면 한국인 행세를 하다가 불리하면 외국인으로 둔갑하는 이런 「이중성」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려는 현실이 됐다.

■말썽많던 재외동포법이 3일부터 시행됐다. 내국인과 동등한 법적지위 보장을 골자로 한 이 법이 재외동포들의 「현지화」와 상충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금도 본국신문을 밑줄쳐 가며 귀국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실패한 이민」들을 양산하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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