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80년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광란」의 「반란」은 성공했다. 3일 뚜껑을 연 제43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 결선투표(11월29-12월2일) 결과 비운동권 후보인 「광란의 10월」팀 허 민(許 民·23·응용화학부4·사진)씨가 4,957표(득표율 48.3%)를 얻어 4,873표(47.5%)를 얻은 민중민주(PD)계열 운동권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비운동권 후보가 선출된 것은 84년 학생회 부활 이후 처음이다.
허씨는 『운동권 학생들의 표가 결집될 것으로 생각해 당선을 확신하지 못했다』며 『환경, 대중문화, 여성,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학생 참여의 장을 만들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서겠다』고 말했다. 전국대학의 축제를 연결하는 「문화네트워크」 창설을 꿈꾸는 허씨는 『90년대 대학생은 정치문제뿐 아니라 문화와 학내복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학생들을 이끈다는 생각보다는 학생들의 소소한 일이라도 학생회정책으로 잇는 「생활 학생회」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허씨는 선거기간에 「고시생 합격기원제」 「지하주차장 건설」 등 이색공약과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유세로 관심을 끌었다. 멀티비전을 동원한 힙합댄스 유세(본보 11월19일자 26면)를 선보이는가 하면 유인물이나 전단없이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 「가려운 곳을 긁어라」를 통한 의견개진과 토론만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 성모(31)씨는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을 이끌어 왔다는 서울대의 자부심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면서 『시대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학생회 따로, 학생 따로」였던 운동권에 대해 학생들이 따끔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민석(金民錫·국민회의)의원은 『변화한 시대에 비춰 비운동권 당선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학생운동의 영향력 상실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밝혔다. 서울대 이정재(李政宰) 학생부처장은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신세대 학생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일 현재 선거가 끝난 76개 4년제 대학중 강경주사파(NL) 계열로 분류되던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충북대 등 절반이 넘는 40개 대학에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돼 비운동권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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