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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도 이혼도 왜 여성에겐 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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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도 이혼도 왜 여성에겐 짐인가요"

입력
1999.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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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35·방송인) -오숙희(40·여성학자) 대담우리 사회는 나이 들면 혼인해야 하고 아버지 어머니 밑에 아들 딸이 골고루 섞인 가정만이 단란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문에 정형을 벗어난 사람들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성공한 여성에게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거나 이혼한 여성과 그 가정을 백안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혼한 세쌍 중 한쌍이 이혼할 정도(98년 통계청 조사)로 한국사회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성공한 여성으로 이혼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어머니이기에 이겨냈다는 두 사람이 만났다.

- 두 분은 무척 달라서 오늘 대화가 순조롭게 이어질 지 모르겠어요.

오숙희 = 여자고,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려움을 겪어봤고 또 결혼과 이혼을 함께 경험했으니까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백지연 = 『넌 성공했고 승승장구했으니 여성으로서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느냐』고들 하시는데 12년간 방송앵커로 정상을 지키는데는 남모르는 역경이 많았습니다. 남자는 의욕이 있으면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여성은 거만하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하는 평, 저도 다 받아봤습니다.

오숙희 = 기가 세다, 설친다고 하지요.

백지연 = 이번의 소송사건도 결국 「성공한 여성이 과연 자기 능력으로 해냈을까」하는 비뚤어진 시각이 극대화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여자가 저렇게 성공하려면 뭔가가 있겠지, 실력만으로는 아닐거야 하는 것이 결국은 엉뚱한 소문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 그러고보니 두 분 다 이혼하면서 황색언론으로부터 피해를 입었군요.

오숙희 = 백지연씨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웃음). 당시 「오픈」이라는 잡지가 저를 인터뷰하지도 않고 인터뷰한 것처럼 기사를 썼어요.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여성운동가는 이혼한다」는 케이스로요. 그 잡지가 창간했을 때 제가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씨와 함께 대담을 해주었거든요. 그 사진에서 심각한 표정을 골라서 마치 인터뷰한 것처럼 조작한 것입니다.

백지연 = 그래서 소송을 하셨나요.

오숙희 = 보수적인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의상 방학이 되면 명예훼손소송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가 되어 그 잡지가 폐간이 되었어요. 속으로는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소송할 생각 하면 끔찍했거든요. 지금은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저는 백지연씨가 용기있다고 봐요.

백지연 = 저 자신만을 위한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목숨보다 아끼는 아이에 관한 것이었어요. 엉뚱한 기사를 쓴 기자한테도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와 마찬가지로 내 아이의 인권도 생각을 해달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커리어, 신앙, 그다음이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 신앙 커리어순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소송도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아이에게 진실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신념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맡으면서 지나치게 큰 희생을 입은 것 아닙니까.

오숙희 = 아이를 안 맡았으면 아마 「비정한 모성」이라고 했을걸요.(웃음)

백지연 = 왜 엄마가 아이를 맡았을까, 왜 양육비도 안 받았을까, 그러니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라고들 생각합니다. 왜 여자가 못 키웁니까. 내가 능력이 있어서 양육비를 안받겠다는데 왜 비뚤어진 눈으로 봅니까.

오숙희 = 아버지든 어머니든 우리나라에서는 재혼하지 않은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사실 아버지가 맡으면 재혼을 한 뒤 결국은 새어머니가 키우는 것이잖아요. 저도 그 점에서 제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혼의 고통에서 저를 일으킨 것도 일이었어요.

백지연= 저는 당시 방송과 대학강의를 병행했는데 남들 앞에서 태연한 척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방송에서 명예훼손소송을 다루면서 배부전씨의 주장만을 집중소개했습니다. 저는 그때 광고 찍느라 지리산에 가 있었는데 방송을 보고 어머니가 쓰러지셨어요. 아기가 놀라 우는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 이웃집에서 보고 달려와 겨우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후로 두 달동안 아이가 저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계속 데리고 다녀야 했어요. 기자들은 좇아다니지, 아이가 노출될까봐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왜 사람들이 진실을 믿어주지 않을까 분노와 억울함을 컨트롤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며 겨우 참을 수 있었어요.

오숙희 =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큰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이혼하면서 인간관계의 옥석을 가렸다고 지금은 그러지요.

백지연= 저만 해도 유명인사인데도 이 정도인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투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런 여성들을 도울 겁니다.

오숙희 = 우리는 아이를 키울 경제력도 있잖아요. 그런 능력이 없어서 울면서 아이를 내주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이혼하면 감정이 갈 때까지 가기 때문에 아이에게 아버지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가 힘들어요.

백지연 = 제 개인적인 감정과 상관없이 아이에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여성에게 이중의 부담이죠.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상이 긍정적으로 남아있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접견권은 거부하고 있어요.

오숙희=이혼은 부부사이의 문제이므로 이것이 해결된 경우에는 아이에게 상대방에 대해 욕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요. 그래서 여성민우회에서 한부모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 여자들끼리 모여 다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나라 남성들이 미성숙해 위자료 달라면 아이 뺏아간다며 아이를 볼모로 여성을 협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판에 무슨 호주제냐구요. 아이를 키울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친권과 양육권을 줘야지 호주라는 이유로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백지연 = 우리나라 이혼법에 보면 이혼해 엄마가 아이를 키우더라도 친권은 남편에게 있어요. 엄마의 친권은 양육권일뿐이죠. 우리나라 호주제는 말이 안되는 법이예요. 그래서 호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모임에도 기꺼이 함께 참여해 돕겠다고 말했죠.

오숙희 = 저도 이혼할때 아이들에게 내 성을 따르게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가족법상으로는 엄마성을 따르면 사생아가 됩니다. 호주제를 없애고 주민등록표에 엄마 아빠만 쓰면 되지 않나요. 이혼한 후 여자가 아이를 데려온 후에도 남자 집안 호적에 아이들이 여전히 기록되어 있어요. 싫고 불쾌해요. 일가창립을 했는데도 내 아이의 호주는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남편으로 되어 있고 아이와 나는 법적으로 동거인일뿐이예요.

백지연=유아원에 아이를 보내면 요즘엔 아빠 참관수업, 아빠 그려오기 등을 당연시해요. 평소에 아이교육에 참가하지 못하는 아빠를 참여시킨다는 의미이지만 이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가 많아지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해요.

오숙희=맞아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우리 곁에는 핵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합니다. 학교교육도 달라져야 해요.다른 나라에서는 이혼녀가 아이를 양육한다고 하면 책임감있고 용기있는 여성이라며 존경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오히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캐려하고 비난하기만 하잖아요. 자신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해요.

백지연= 이혼을 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이 선택이므로 잘못되었을 수 있고 차선의 선택이 이혼이라면 피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훌륭한 엄마라면 아이에게 심리적 기둥이 되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이혼할 수 있었어요. 방송에 복귀하게 되면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여성이 승승장구하기까지의 노력을 무조건 비뚤어지게 보는 시각, 이혼여성에 대해 무조건 백안시하는 태도, 언론의 태도 등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제가 절실히 깨달은 부분입니다.

오숙희 = 이혼한 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세상은 당신이 넘어지면 밟고 지나가지만 당신이 일어나면 우러러본다」고요.

백지연 = 저한테 하시는 이야기지요. 좀 일찍 해주시지.(웃음)

서화숙 여론독자부장 hssuh@hk.co.kr

노향란기자 ranh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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