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들이 살과 피가 튀는 물리적 공포감에 주력한다면, 일본판 호러는 영적인 부분에 더 치중한다. 일본작가 스즈키 코지가 쓴 소설 「링」은 280만부가 팔려 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 감독 나카다 히데오가 감독을 맡아 영화로 만들어 지난해 일본에서 150만명 관객을 동원한 오리지널 「링」이 개봉된다. 지난 6월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링」(감독 김동빈)은 일본의 소설과 영화붐을 업고 국내에서 기획된 작품.원귀(怨鬼)가 비디오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저주를 내리며, 마지막에는 마치 비디오 복사본처럼 귀신마저 복사, 재생산된다는 설정으로 특히 영상 세대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 7일내에 죽게 된다는 비밀을 푸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국판이나 일본판에서 변함이 없다.
인물 설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본판 주인공은 방송사기자인 아사가와 레이코(마츠시마 나나코). 학생들 사이의 괴소문을 취재하던 중 조카의 죽음을 맞게 되고, 이어 아들이 비디오를 보는 바람에 비디오의 수수께끼에 매달리게 된다. 아이들 사이의 소문으로 떠돌고 있는 비디오 귀신 이야기를 미리 설정해 놓은 후 주인공의 개별 사건으로 좁혀 들어감으로써 감정이입이 자연스럽다.
국내판에서는 신문기자(신은경)가 자신과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영적 세계를 경험한 외과의(정진영)와 파트너를 이룬다. 일본판에서는 약간의 신기(神氣)가 있는 전남편 다카야마 류지(사나다 히로유키). 원작 소설에서는 기자인 남성이 비밀을 푸는 주인공. 영화 말미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로 선택되는 것은 일본판에서는 아버지, 한국에서는 어머니로 설정.
두 영화의 결정적 차이는 한국판이 귀신의 실마리를 논리에 의존, 추리적 기법으로 풀어가고 있는 데 반해 일본판은 전 남편의 직감에 의존하는등 훨씬 영적인 부분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판에서는 죽은 전남편이 나와 비디오를 가르치며 암시를 주는 대목 등이 부각된다. 암울하고 충격적 영상이 주는 공포의 정도는 일본판이 역시 한수 위. 비디오를 본 후 사진으로 나타나는 왜곡된 주인공의 모습은 공포스럽고, 비디오에서 기어나오는 귀신의 이미지도 국내판을 통해 스토리를 인지하고 있다해도 상당한 전율을 느낄만큼 공포스럽다.
그러나 이미 리메이크 판이 소개돼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신선도는 떨어지는 셈. 호러의 매력은 역시 「다음에는 어떻게」하는 호기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월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11일 개봉. 오락성★★★☆ 예술성★★★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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