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에 「노란불」이 켜졌다. 세계무역기구(WTO) 시애틀 각료회담(뉴라운드)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정부 대표단이 1일(현지시간) 농산물 시장의 「문턱」을 상당히 낮출 수도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시애틀 각료회담 뒤 진행될 뉴라운드 협상에서 추가적인 시장개방폭이 판가름나겠지만, 현재와 같은 불리한 판세를 뒤집지 못할 경우 2004년이후 농산물 시장에는 「빨간 불」이 켜질 전망이다.정부는 그동안 농산물 관세 대폭인하 등 수출국들의 시장개방 요구에 강력히 저항해왔지만, 우리나라 국력으로나 국제적인 세력판도에서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우리는 미국과 함께 WTO의 양대세력인 유럽연합(EU)의 힘을 빌려 최대한도 농산물 시장개방을 막는「EU 연대」전략을 폈지만 대부분의 개도국들이 농산물 수출국 입장에 동조, 난관에 봉착했다.
우리 대표단은 농산물분야협상과 관련 농산물의 다기능성및 비교역적 기능의 인정과 국내 보조금 점진 축소 문제는 어느정도 관철하되 관세인하 문제에 있어서는 농산물수출국과 「어느정도」 타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입장변화는 EU가 농산물 때문에 협상이 깨지는 것보다 타협해서 뉴라운드를 출범시키는 것이 농산물 수입국에 이득이라는 점을 설득한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농산물 시장 개방을 무리하게 막으려다 우리나라 경제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공산품 시장 개방문제 등에서 차질을 빚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려도 작용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농업이 차지하는 정치·사회적 중요성 때문에 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공산품, 서비스, 반덤핑 등 여러 중요이슈를 다루는 이번 회담이 우루과이라운드(UR)때와 같이 「농산물 협상」으로 축소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농림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UR 타결직후 6.2%에서 2004년에는 4.1%로 떨어지고, 총인구 대비 농어촌 인구 비중도 10.9%에서 7.3%로 낮아진다.
그렇다고 내년부터 농산물 시장이 갑자기 개방물결에 휩쓸리는 것은 아니다. 시애틀 각료회담뒤부터 시작될 뉴라운드 협상이 2003년에 완결되기 때문에 실제 구체적인 개방계획은 2004년이후부터 실행된다.
농산물 수출국은 그동안 농산품도 공산품과 동일한 수준으로 수입을 자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농산물수출국들은 선진국의 공산품 평균 관세율이 5% 안팎인 점을 들어, 농산물관세를 한자릿수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UR 협상때 농산물 관세를 선진국은 2000년까지, 개도국은 2004년까지 평균 30% 내리기로 했기 때문에 각료회담 선언문에 관세 대폭인하 표현이 들어갈 경우 UR 수준의 관세인하조치가 2004년이후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콩 고추 마늘 등 수백% 대의 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농산물은 중장기적으로 두자릿수로 떨어지고, 관련 농가의 피해는 적지않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UR 이후 우리 정부가 농어촌 구조개선사업 등에 5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 경쟁력 강화에 힘써왔지만 이제 「뉴라운드 2차 개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전략 마련이 시급해졌다.
시애틀=윤순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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