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이란 속담이 있다. 분쟁의 원인은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 이득이라는 뜻일게다. 그러나 긁지 않는다고 해서 부스럼이 완치될까. 오피니언면의 포럼란을 담당하다 보면 속담만 믿는 사람이 많아 답답하다.포럼은 찬반의견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양쪽의 입장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는 난이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에게 원고를 부탁하다보면 「문제가 불거지면 오히려 손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고엽제 피해 책임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그렇다.
기자는 지난달 29일 미국 대사관에 「고엽제 살포 책임」에 대한 공식 입장을 요청했고 대사관측도 수락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23일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미국은 책임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대사관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후 대사관은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거부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한미 정부간의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는 것이 이득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런 태도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문제를 다루려던 때에도 경험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박대통령 기념관을 짓는 것에 반대 여론이 팽배한데도 박정희기념관건립위원회(위원장 신현확·申鉉碻)측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이득이 없다』며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수돗물 불소화를 주장, 관련법안을 냈던 치과의사모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같은 태도는 여론으로는 불리하지만 물밑작업으로는 유리한 집단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공론화를 거부하는 대신 이익집단만을 움직여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민주사회를 이끌어가는 바른 정신이 아니다. 현대의학으로는 부스럼은 손대지 않는다고 낫는 것이 아니라 원인균을 도려내야 낫는다.
노향란·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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