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오지 않을테다. 세상에 아무리 놀부보다 더 한 구두쇠라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걸. 내가 다시 오나 봐』눈물을 흘리며 할머니 댁 대문을 나섰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서 할머니를 뵈러 찾아간 길이었다. 과수원에 주렁주렁 많이도 열린 배를 보고 그중 제일 크고 잘 생긴 놈으로 하나 뚝 따서 먹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썩은 배 몇개를 쟁반에 주시며 먹으라고 했다. 태교를 열심히 하는 중이라 가능하면 예쁜 것을 먹으려했는데 할머니는 그런 마음을 몰라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장자인 내 부모님의 관계가 그리 원만치 않았기 때문에, 배가 불러 먼 곳서 찾아온 손녀를 이렇게 대접하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급기야 울컥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자리로 일어나 대문을 나서며 『다시는 안오리라』 다짐을 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 큰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따지고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니었다. 내가 철없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 나는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해마다 할머니께서 내 이름을 부르며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쉽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할머니는 90세가 넘어섰다. 언제 다시 뵐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려워지면서 나는 드디어 할머니 댁을 찾았다. 15년만에.
할머니는 내 두손을 꼬옥 잡고 웃으시며 가지가 휘도록 열린 단감을 몽땅 따주었고, 아이들에게는 과수원을 구경시켜 주며 배꽃 감꽃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약 15년전 『태교중이니 예쁜 것 하나만 따 먹겠다』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어찌 할머니가 썩은 배를 주었으랴.
할머니는 너무 커버린 아이들에게 감따는 방법과 어릴 적 나의 이야기를 해주고 전국의 명산과 지리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또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할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보니 훌쩍 지나간 15년의 세월이 만국기처럼 과수원에 펄럭였다.
이순희·전남 목포시 용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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