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난을 면해 보려고 사실을 조금 왜곡한다. 우리의 일상사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철딱서니 없는 사모님이 고급 옷을 한번 입어 보기만 하고 돌려보냈다고 했다. 사실대로 밝혔다면 작은 비난으로 끝났을 일이다. 하지만 작은 왜곡이 또 다른 왜곡을 낳는 악순환 고리에 걸려들어 점차 문제가 커졌다.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빚은 것이다.사실을 엄격히 조사해야 하는 검찰에서도 아주 조금씩만 왜곡했다. 딱 한번 입어 봤다는 연정희씨의 진술을 검찰은 팔에 한번 걸친 적은 있으나 입어본 적은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조금 다른 이유에서 사실을 왜곡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충성심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충성했단 말인가? 대통령에게? 아니면 검찰총장에게? 국가를 위해? 아니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도덕성을 결한 충성심이 얼마나 위험한 단어인지 모른다. 조직폭력배들도 그들 나름의 충성심으로 뭉쳐지기 때문이다. 조직이 충성심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시작하면, 페쇄적인 문화가 조직에 정착되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충성심과 복종이 강조되는 군대조직에서도 상명하복에 도덕성이 결여되었을 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히틀러 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노근리 참사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군대가 아닌 공무원 사회에서조차 일단 관료가 되면 선배 동료 상관으로부터 충성하는 방법을 유형무형으로 훈련받게 된다. 충성심 훈련이 잘된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이면서 연줄을 형성한다. 이렇게 충성심에 기반을 둔 연줄문화는 조직의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폐쇄적인 조직의 특징은 조직의 목적보다는 조직 자체의 자기 논리만으로 사물을 해석한다. 더군다나 부하직원에 대한 평가방법도 그가 담당하고 있는 직무에서 기대되는 성과를 달성했느냐보다는 자신의 의도대로 얼마나 충성했느냐로 측정한다. 똑똑한 자들이 멍청한 짓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훈련된 충성심이 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충성심을 갖고 있는 부하직원은 충성의 대상이 되는 윗사람에게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 그에게 부담이 될만한 자료나 정보는 가급적이면 부드럽게 다림질해서 보고한다. 이 다림질을 잘 하는 직원들일수록 유능하다고 평가받게 된다. 한두 번 그렇게 하다보면 그것이 관례화되어 누구나 그렇게 하게 되고 윗사람은 진실한 정보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다.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이란 결국은 최고관리자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된다. 관료화된 조직일수록 그것이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고위직 공무원들을 임용하고자 할 때 충성심이 아니라 직무에 대한 적합성을 고려해서 선발하고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직무적합성을 측정하는 과학적인 방법이 바로 역량모델(Competency Model)이다. 이 모델에 의한 능력주의 인사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최동석
한국은행 직무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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