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사람들은 이 땅의 동쪽 돌출부에 몰린다. 새 천년의 첫 해오름을 직접 맞기 위해서. 평범한 새해에도 고생을 무릅쓰고 동쪽으로 달려가던 그들에게 천년만에 한 번 맞는 해돋이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가다가 길이 막혀 차안에서 새해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 「밀레니엄 대이동」이다.새해 첫 해는 독도에서 오전 7시26분19초에 뜨고 육지에서는 7시31분17초에 울산의 간절곶에 얼굴을 내민다. 일출의 명소인 강릉 정동진에는 7시38분52초, 서울 남산에서는 7시46분42초에 해를 볼 수 있다.
동해와 남해 그리고 유명산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이를 축하하는 축제를 연다. 가장 큰 행사는 새천년준비위원회와 포항시가 여는 호미곶 해맞이축제. 행정구역상 장기곶인 호미곶은 남한 육지의 최동단. 비록 울산보다 늦게 해가 뜨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호미곶등대옆 1만3,000평의 광장에서 마련되는 이 축제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밤새 송구영신의 의식을 치른 뒤 해를 맞는다. 첫 햇빛에서 불을 채화하는데 이 불은 「영원의 불」로 명명돼 새 천년에 열리는 큰 행사를 밝히는 데 사용된다.
이미 동해안을 비롯한 모든 일출명소의 숙박시설은 예약이 끝났다. 개인적인 열성파도 많지만 여행사들이 무더기로 선점한 탓이다. 편한 밀레니엄여행을 원한다면 여행사가 내놓은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행사의 상품은 크게 일출과 일몰+일출등 두가지. 일출여행은 31일 저녁에 출발해 동해안의 일출 명소에서 해를 맞는 것이 대종을 이룬다. 고성 청간정, 낙산 낙산사, 하조대, 강릉 정동진, 추암해변, 울진 망향정 ·월송정, 영덕 삼사해상공원, 경주 감포해변등 대표적인 일출명소. 산으로의 일출여행도 많다. 태백산, 지리산, 경주 토함산등이 그것으로 지리산의 경우에는 일출 참관인원을 제한해 예약을 받는다.
천년을 보내는 일몰도 빼놓을 수 없다. 서해안의 돌출부인 변산반도등에서 해넘이를 위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고, 여행상품도 등장했다. 일몰+일출여행은 31일 낮에 서해안으로 출발, 1000년대의 마지막 낙조를 보고 동쪽으로 이동해 새해 첫 해를 맞는 상품이다. 인천 백령도, 충남 왜목마을등은 일몰과 일출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이 곳을 행선지로 잡은 상품도 있다. 일출 장면이 좋은 바다 위로 배를 타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선상 일출」. 남해안과 서해안을 찾는 일부 여행사가 선상일출 상품을 내놓고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 일출명소 4선 *
■정동진(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드라마 「모래시계」의 히트에 힘입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일출명소. 서울 광화문에서 정확히 동쪽에 있다고 해서 정동진(正東津)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 곳에는 기네스북에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기록된 정동진역이 있다. 역 앞에 펼쳐진 백사장, 바다로 돌출된 바위, 거친 파도등 일출을 감상하기에 좋다. 무엇보다 기차가 도착하는 역이 바로 일출을 보는 장소이기 때문에 부근의 교통정체가 심해도 기차를 이용하면 쉽게 닿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진입로인 7번국도 안인진리-정동진해수욕장 구간은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구간. 올해 1월1일에도 정동진행을 결정했다가 체증이 심해 길 위에서 새해를 맞은 사람들이 많았다. 강릉시는 이번 밀레니엄해돋이를 맞아 이 구간을 일방통행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삼사해상공원(경북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높은 언덕 위에서 푸른 동해를 조망하며 웅장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왼쪽으로 펼쳐지는 강구항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이 일품이다. 서울에서 육로로 6시간30분 이상이 소요되는 곳이어서 상대적으로 덜 붐빌 것으로 예상된다. 영덕군은 이 곳에서 해맞이축제를 연다. 전야제를 치르고 해가 뜨기 직전 동해별신굿을 펼친 뒤 웅장한 합장으로 일출을 맞는다.
소란한 분위기가 싫다면 강구항에서 대진항까지 이어진 30여㎞의 917번 국도에서 일출을 보는 것도 좋을 듯. 강구항은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진 곳. 푸르고 맑은 청정해역의 물빛, 기암으로 연결된 영덕의 해안선, 그 기암을 타고 넘는 도로 등 환상적인 밀레니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영덕 대게가 제철을 맞고 있다. 눈과 가슴으로 만끽한 새 아침의 추억을 입으로도 즐길 수 있다.
■장기곶(일명 호미곶, 경북 포항시 대보면 대보리)
장기곶에서 구룡포에 이르는 13.5㎞의 해안선은 남한에서 가장 동쪽으로 뻗어있는 육지. 조선 명종때 남사고가 지은 「산수비경」에 「한반도는 만주를 할퀴고 있는 호랑이의 형상이고 장기곶은 그 호랑이의 꼬리(虎尾)에 해당된다」고 적힌데서 유래했다. 매년 새해 1만여명이 찾는 이 곳은 올해에는 상상도 못할 인파로 붐빌 것이 예상된다. 포항시는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917번 지방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운영할 예정이지만 외길이기 때문에 심한 체증을 피할 수 없을 듯. 정동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길이 막히면 미련없이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본전이라도 건지는 방법이다. 구룡포 남쪽으로 대진, 감포해변과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등 일출의 명소가 연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해안의 대부분 식당에서 복어탕을 끓인다. 콩나물을 수북히 썰어 넣은 뒤 담백하게 끓여 낸 복어국은 일출을 보느라 차가워진 볼을 덮히기에 그만이다.
■왜목마을(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2리)
해가 서쪽에서 뜰 일? 서해바다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서해의 섬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육지에서는 드물다. 북쪽으로 툭 튀어나온 독특한 지형 덕분이다. 동쪽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히 경기 화성군과 평택시의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수평선과 올망졸망한 섬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동해의 일출이 장엄하다면 이 곳의 일출은 소박하면서 서정적이다. 서해안이기 때문에 일몰도 볼 수 있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로 떨어지는 일몰은 서해안 일몰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장관이다.
왜목마을에는 달랑 8가구 25명의 주민이 산다. 그러나 이 곳을 찾는 관광객, 사진작가등이 연간 200여만명에 이른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수시로 당진행 고속버스가 있다. 약 2시간 소요.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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