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말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표현해 내는 몸짓과 음악, 모두 우리 것이다.「못 다한 사랑」. 올해로 서거 50주기를 맞는 백범 김구의 생을 추적, 재구성했다. 그러나 흔히들 해왔듯, 그를 영웅으로 그려 추모식으로 나열하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의 출발은 뜻밖에도 김구의 장례식. 49주기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암살의 배후를 밝히라』고 외친다. 1913년 인천감옥에서의 옥살이와 탈옥, 3·1 만세 운동과 해방, 해방 공간의 혼돈기 등을 그리며 오늘날 백범이 갖는 의미를 새긴다. 지난 7월 「창극 김구」와 「오페라 김구」 등 백범 서거 50주년을 기념하는 대작이 잇달았지만, 비운의 위인이라는 데서만 그쳤던 점과 다르다.
비장으로만 치닫기 쉬운 분위기에 대한 제동 장치가 주목된다. 『백범의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 양식은 물론, 현대적 감각 또한 살리지 않을 수 없죠』 민족음악연구회 등지에서 활동해 온 음악 감독 류형선(36)씨가 밝힌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노래 36곡, 무용음악 16곡 등 모두 52곡의 신작을 지었다.
학살 장면에서는 당시 일본의 군가를 변주한 곡, 평화 장면에서는 정가나 민요 등이 차용된다. 「다방의 푸른 꿈」 「슈샤인 보이」 등 당시를 풍미했던 유행가 선율 또한 빠질 수 없다. 음악이 어법상으로 주제와 긴밀히 연관돼 이 채롭다. 「꽃마차」가 원래대로 연주되다 스윙으로 변환돼 친일에서 친미로 넘어가던 당시 세파를 설명없이 표현해 낸다.
이 작품은 올초 연출가 박인배씨가 고은 시인에게 뮤지컬 대본으로 부탁, 8월 대본 수정 작업이 완료됐다. 예술총감독 문호근, 연출 박인배 등 중견들의 원숙한 극작술이 마당극 어법과 서구 프로시니엄 무대를 오간다. 서울 초연을 끝내면 2000년 들어 전주 광주(비엔날레) 부산 대구 등 대도시 공연도 있다.
이 뮤지컬의 압권은 맨 마지막 장면, 객석과 무대의 합창 대목. 『우리에게 있어라 저 백두산…백범 김구여 오라 통일 그날까지』 극장 입장 때 나눠주는 가사를 보고 객석이 출연진과 입을 맞춘다.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김구 역), 「레 미제라블」의 김명희 등 40여명의 배우가 출연. 12월 4-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4일 오후 7시, 5일 오후 3·7시, 6일 오후 7시 30분. (02)720-9272
*칼라먼자로의 표범
이제 시대는 지금으로 간다. 데이트 도중 애인이 깡패에게 성폭행 당해 자살하고 만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남자 앞에 분노의 화신 칼리가 나타난다. 주저하던 남자는 마침내 악을 응징하기 위해 입교식을 치르고 그의 제자가 된다. 고문기술자, 친일파 경력의 국회의원, 사회사업가의 탈을 쓴 악덕 기업가 등을 응징해 가던 그는 갑자기 심한 혼돈에 빠진다.
그 기업주의 장례 행렬에 각계의 추도 인파가 끊이지 않았던 것. 자신을 쫓는 경찰의 포위망에 마침내 자살을 시도하던 우진은 그 순간, 칼리란 바로 자기 속의 정의였음을 깨닫고 투항한다. 서울시 뮤지컬단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악 앞에 무력한 양심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현란한 하이에나 클럽 풍경, 초록빛의 우울한 도시 세트 등 무대는 판타지 뮤지컬을 표방하는 이 작품의 몽환적 이미지와 그대로 부합된다.
세미 클래식과 발라드풍에다 댄스 음악까지, 모두 26곡의 음악이 함께 한다.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 오르간에다 25인조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음악의 향연. 중견 작가 양인자(54)의 극본, 양씨의 남편인 「명성황후」의 작곡가 김희갑(63)의 음악, 연출가 이종훈(45)의 지휘 등 관록의 제작진이다. 탤런트 박상원, 뮤지컬 배우 주성중 김법래 등 낯익은 얼굴들이 열연을 펼친다. (02)399-1626-8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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