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은 많은 말을 한다. 때로 그것은 언어보다 더욱 강렬하고 직접적이다.한국 마임의 1세대 김성구가 「라디오 드라마」를 상연한다. 98년 김성구 마임극단을 창단하고, 지난 8월 두 번째 마임 대본집 「묵극-별과 방랑자」를 펴낸 이래 처음으로 갖는 그들의 마임극 공연이다.
김성구 마임극단은 마임 하면 피에로의 유희나 코믹한 몸짓 만을 떠올리기 십상인 현실에 대한 의식적 반명제로서 창단됐다. 중견 극작·연출가 기국서씨가 대본을 쓴 이번 묵극(默劇)은 잡다한 사물들 앞에 야위어만 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들춰내 보인다.
신문을 유심히 뒤적이던 가난한 청년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잊고 있던 일상과 욕망에 얽혀든다는 내용.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비여/나를 용서해 다오」. 작가 기국서씨는 방치된 어떤 청춘에 대한 위로처럼, 천상병 시인의 「장마」를 대본에다 슬쩍 끼워두었다.
전화번호부, 커피잔, 누드집 등으로 둘러싸인 청년. 어느날 라디오의 지직댐에 눈 뜬 청년의 의식과 욕망을 무대 뒷켠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가 말해준다. 『하루가 지나간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어제와 똑같이 반복한다. 매일 매일 같은 하루, 아무런 음모도, 사랑의 동기도 없이』 청년의 탈출구 없는 일상처럼 라디오 방송도 그 내용이 그 내용.
이번 마임극은 말 많기로도 기존의 마임과 다르다. 라디오 뉴스 속의 아나운서 멘트 형식으로 무대에 쏟아지는 언어들. 『어제 저녁 동대문에서 열린 서바이벌 게임에서 두 명이 숨지고, 다섯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더군요』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극의 마지막, 『그럼 음악 한 곡 듣고 다시 시작하죠』
김성구는 74년 김동수 유진규와 함께 국내 마임의 역사를 시작한 사람. 이번 마임극은 설치, 오브제, 다양한 조명 등으로 효과를 극대화한다. 1~2일 오후 7시 30분, 3~5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씨어터제로. (02)993_6383
극단 동인의 「'99 뱀이 내게 유혹했다」. 뱀의 유혹으로 타락한 인간군상의 오늘을 그린다. 복제인간, 왕따, 학원폭력, 아가동산 사건 등 집단 마임으로 형상화한 세기말 한국의 모습이다. 마약, 자살, 살인 등 극단에 치닫기까지의 모습이 테크노 음악의 혼돈 속에서 펼쳐진다. 70년 장 클로드 반 이탤리가 쓴 「뱀」을 원작으로 했다. 뱀이 허물벗기 하듯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송형종 연출, 서정선 안무, 박삼규 등 15명 출연. 12월 2~26일 소극장 리듬 공간. 화~금 오후 7시 30분, 토·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02)3672_4293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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