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국립러시아미술관의 이상원(65) 초대전 개막식. 극장 간판쟁이였던 그가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푸쉬킨, 트레차 , 에르미타쥬 박물관과 함께 러시아 4대 미술관에 꼽히는 러시아의 대표적 국립미술관에서 외국인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 개최라는 영광을 안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소박한 청색 작업복 차림으로 600명이나 되는 관객 앞에 선 그는 『이 작품들은 6·25, 1·4후퇴 등을 거치며 살아온 나의 삶의 역정과 애환을 담은 그림들』 이라고 소개했다. 무학(無學)에, 마흔이 넘어 화단에 입문한 지 25년 만에 갖는 감격의 무대였다.
정규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 국내 미술계에서 재야 작가로 외롭게 홀로 활동해 온 그가 이같은 행운을 안게 된 것은 98년 5월 러시아 연해주 주립미술관 초대전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가 러시아에 알려지면서. 먹과 오일의 교묘한 배합을 통해 세필로 이루어진 극사실풍의 그림들은 리얼리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관객들은 줄을 지어 그에게 사인을 부탁하면서, 「물감이 무엇이냐」 「왜 노인만 그렸느냐」 「현장작업이냐」 「먹처리는 어떻게 했느냐」는 등 질문을 던졌다.
국립 러시아 미술관장 블라디미르 구세브씨는 『이씨의 작품에서는 동양의 전통적 시선과 서양의 새로운 기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면서 『눈위로 지나간 타이어 자국이나 노인의 주름살 등 그가 즐겨 표현하는 그림 속에서 세월의 흔적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러시아 미술관측은 서구미술에 초점을 맞추었던 운영 방식을 수정, 보완하면서 그의 개인전을 초대하게 됐다.
이상원씨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한인 작가의 전시회를 축하하기 위해 모스크바 주재 여성 대사들과의 점심약속도 취소하고 참석한 이인호 주러시아 대사는 『러시아 미술관에서 초청장과 함께 보내온 이화백의 도록을 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밝은 미래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면서 『가난하고 어려웠던 삶을 드러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겨운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인지 제시하는 그림들』 이라며 한국 작가의 국제무대 데뷔를 축하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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