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에 대한 내 애정은 사뭇 도저한 바 있다. 그의 글에서 번쩍이는 기지와 아이러니는 소크라테스-모어-에라스무스-볼테르-러셀을 관류하는 그 서구적 재치와는 또다른 맛이 있다. 메타포의 조형력, 심지어 그 주술성으로써 세상과 싸우려는 인문학자들이라면 마땅히 이 문장의 귀재로부터 얻을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의 「열하일기」 를 재미없이 읽었다. 겁번역되지 않는 부분이 시라는 말도 있듯이, 내가 접한 한글 번역본은,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던 그의 문체미를 깡그리 소거해버린 탓이었던지 인스턴트 음식처럼 툭툭했고, 현장감이 없었다. 그후 나는 소크라테스-모어-에라스무스-볼테르-러셀 등을 읽느라고 여러 해를 탕진한 끝에 우연히 「열하일기연구」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조선후기 사상사에 관심을 가진 덕이기도 했지만 홀딱 빠져 밤을 새울 지경으로 재미가 쏠쏠했다. 7장 중 5장까지를 독파한 나는 다음날 외출 중에도 그 책을 지니고 다니다가 그만 버스 속에 흘리고 말았다.
서점마다 책이 없어 출판사에 주문한지 한 달만에 다시 책을 구해 6, 7장을 끝냈다. 앙드레 말로의 재담 중에 겁풍경화가를 만드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풍경화라는 것이 있다. 사실 나는 「열하일기」가 아니라 「열하일기연구」를 통해서 「열하일기」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된 셈이다.
정조는 연암의 「열하일기」 문체를 패관소설체를 유행시킨 원천이라고 지목하고, 남공철을 시켜 자송문(自訟文)을 지어 바치게 했다. 그러나 연암은 어명을 거역한 채 끝끝내 자송문을 짓지 않고 구렁이 담넘어 가듯 사태를 비켜 가버린다.
정조의 하교를 무시한 데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연암의 「만물진성설(萬物塵成說)」 에 따르면, 겁먼지가 뜨거운 김에 쪄지면 마침내 온갖 벌레로 변하고, 사람도 이와같이 발생한 벌레 중의 하나다. 이는 그의 친구 담헌이 지구를 활물(活物)로 보고 그 속의 사람을 이와 벼룩으로 본 것을 연상시킨다. 이 지경이면, 임금의 명령도 가로질러가는 달관과 기지가 어찌 없을손가.
김영민 전주 한일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