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르반 2세의 십자군 전쟁도, 제국주의와 사회주의권의 어떠한 전쟁도, 철저히 도덕성에 충실했던 전쟁은 결코 없다. 한국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살육이 불가피한 전쟁에서 죽이는 상대와 방법을 고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을, 때로는 적국의 인간을 신속하게 많이 죽일 수 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최근의 노근리 사건의 발굴과 비무장지대에서 미군에 의한 고엽제 살포사건으로 인한 파장을 계기로 우리는 전후처리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수년전 일본의 매스컴은 일본의 전후배상에 관한 미결부분을 돈으로 환산한 예가 있다.
종군 위안부 4,000억엔, 강제연행 1조 4,000억엔, 재일 한국·조선인 상이군인 6,800억엔, 사할린 잔류 한국·조선인 B·C급 전범 2억엔, 인도네시아 징용 1,000억엔, 군표 1,000억엔 등 얼핏 합쳐도 2조 8,000억엔이다.
우리가 받을 돈이 또 어디 있는가. 한국전쟁시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미국과 러시아, 중국에서, 해빙무드에 따라 북한에서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줄 곳도 있다. 동티모르에의 파병논란도 베트남전의 부작용을 우려한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하자면 적어도 2차대전 이후에 전쟁이 발발했던 남미,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극동에서 전쟁에 개입했던 당사국과 열강의 논쟁으로 전 세계는 21세기를 전후배상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으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전후배상, 그리고 청산이 경제적인 대가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한국정부가 대일수교 과정에서 유무상 차관으로 배상문제를 법적으로 정리했지만 아직도 국민적 앙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전후문제의 정산이란 돈으로 환산해도 줄 리도 만무하고 받는다고 모든 일이 깨끗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새로운 세기가 보다 평화롭고 화합된 국제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후문제의 처리, 그리고 그 청산이 새로운 위기와 갈드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장기적 국익이 세심한 고려없이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최근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국제사회에서의 보다 지혜로운 자세를 정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방세현·시사정책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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