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4일자와 11일자는 김영민(金榮敏)연세대교수와 손동현(孫東鉉)성균관대교수가 각각 출제해 주셨습니다. (답안은 1,000자이내)■12월4일자 주제
(문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과 다음 제시문을 공통 자료로 활용하여 『때를 아는 삶의 지혜』라는 주제로 논술하시오.
(제시문) 행랑채가 퇴락하여 지탱할 수 없게끔 된 것이 세 칸이었다. 나는 부득이 이를 모두 수리하였다.
그런데 그 중의 두 칸은 비가 샌 지 오래 되었으나,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고, 나머지 한 칸은 비를 한 번 맞고 샜던 것이라 서둘러 기와를 갈았던 것이다.
이번에 수리하려고 본 즉 비가 샌지 오래된 것은 그 서까래, 추녀, 기둥 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쓰게 되었던 까닭으로 수리비가 엄청나게 들었고, 한 번 밖에 비를 맞지 않았던 한 칸의 재목들은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던 까닭으로 그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곧 그 자신이 나쁘게 되는 것이 마치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보다 더 심할 것이다.
잘못을 알고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으면 다시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저 집의 재목처럼 말끔하게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사도 이와 같다.
모든 일에서, 백성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머뭇거리고 개혁하지 않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롭게 되어서야 급작스레 고치려고 하면, 예전처럼 다시 일으켜 세우기가 어렵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중 「이옥설(理屋說)」에서)
■12월11일자 주제
이른바 IMF사태이래 요즈음 우리 나라에선 「세계화」라는 것이 모든 분야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인 것처럼 강조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같다: 1) 무슨 일이든지 세계적 수준으로 뛰어나게 잘 할 것,
2) 무엇이든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수한 것을 만들 것,
3) 그렇게 하기 위해 세계적인 선진국들에 대해 잘 알 것,
4) 그리하여 우리 나라 사람이나 물건이 세계 어디에서나 환영받을 수 있도록 그 능력을 기를 뿐 아니라, 나아가 세계 어디에서나 잘 통용되는 그런 언행을 익힐 것,
5) 개인적인 행동에 있어서뿐 아니라 사회적인 제도나 장치도 그런 방향으로 고쳐 나갈 것.
이렇게 보면, 「세계화」라는 과제에 밀려 민족문화가 위축되거나 쇠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세계화」는 우리의 지상 과제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숙고해 보고, 「세계화」의 참뜻은 어디에 있어야 하며 그 실행의 과정에서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인지, 아래의 예시문을 참조하여 논술해 보라.
(예시문) 고유한 민족문화란…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이루어 온 문화의 민족적 존재양식(存在樣式)과 그것을 형성하는 민족적 사고형식(思考形式)을 의미한다.… 우리의 선조가 애초에 발전시킨 그대로가 아니고 차츰 변성(變成)되었더라도, 그 양식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민족의 문화와는 다른 개성적 형식을 성취하였다면, 우리는 이것을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외래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변성시켰느냐 하는데서 우리 문화의 고유성,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 (조지훈, 『한국문화사 서설』 중에서)
■입선자 명단 (12명)
남성고= 김진훈 순천여고= 박소라 대일외고= 윤동숙 김미정 김민정 이혜미 황자영 김아리 백암고= 임한묵 장지은 최윤미 윤승준
원고마감은 매주 월요일. 원고에 학교명 반드시 명기. 보내실 곳: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 한국일보 사회부 논술담당자 앞. 우편번호: 110-792 전화: (02)724-2313-8 팩스: (02)739-0266
■ 최우수 김선미
정치란 국민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정치가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치에 대한 신념과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지도자에게 정치적 신념이 필요한 것은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가를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함이다.
또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 국민의 지지가 있다는 것은 지도자가 국민의 요구 사항을 알고, 수렴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함을 말한다.
민주 사회에서 지도자는 집단 구성원의 정치를 대신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정책 수립, 시행 시에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지도자의 정치적 신념은 국민의 요구와 충돌하여 문제가 된다. 과거 우리의 정치는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재적으로 정책을 집행하였다. 지도자의 경제 개발이라는 신념 아래 과거 일본의 만행을 묵인하겠다는 협약이 이루어졌고, 국민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 4.19의거와 5.18광주 행쟁이 일어났다.
과거의 잘못된 정치 수행은 현재 국민들에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되었다. 만약 당시의 지도자가 올바른 정치관과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좀 더 고차원적인 정치사를 회상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정부는 열린 정치, 열린 정부를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음 총선을 대비해 세제 개혁을 미루고 있고, 직장의보와 국민의보의 통합도 미루고 있다.
또 당의 이익을 위해 선거공천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기도 한다. 지도자가 국민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점을 고려하여 정치를 한다면 잘못된 정치 신념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란 말 그대로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바르게 다스리려면, 지도자는 국민을 이해하고, 국가의 문제를 고려하여 바른 신념을 세워야 한다. 지도자의 정치 신념과 국민의 요구가 조화를 이루고 국가를 이끌어 나가야 국민은 국가를 믿고 살 수 있을 것이다.
■ 우수 김병관
오늘날 한국 정치의 행태는 기본적으로 극한 대립과 갈등의 정치적 환경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밖으로는 동서 냉전과 남북한 대결, 안으로는 억압적인 근대화 추진 세력과 민주화 투쟁 세력간의 극한 대립 등의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 정치의 윤곽이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날카롭고 경직된 대결의 정치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 정치는 많은 오점을 남겼다.
군사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의 권력 구조는 집권자에게 매우 강력한 위계적 권한을 부여해 왔다.
이는 강력한 리더십 하에 통치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자를 쉽게 오만하게 만들고 건전한 판단을 가로막을 위험성도 크다.
여기에 권위주의와 독선이 더해지면서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에 내재된 위험을 증폭시켜 왔다. 70년대 유신체제 반대 운동 탄압,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군사적 억제는 가혹하고 전제적인 과거 정치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요즈음은 양극화된 극한 대립의 시대를 넘어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고 국내외 환경이 복잡하게 유동하는 시대이다.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정치의 틀을 근본적으로 개편하고 지도자는 유연하고 순발력있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치적 기득권자로서 과거의 틀을 답습하여 권력을 향유하고 유지하는데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정치이다.
한 예로 그린벨트 해제 문제에 대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던 지역 주민들은 해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쾌적한 환경권 보호를 위해 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정치 지도자는 그린벨트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파악하고, 과연 그것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이 타당한지 판단해야 한다. 단지 선거에만 당선되기 위해서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올바른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권세를 누릴수록 편법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옳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지도층에서부터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 우수 홍진우
우리 나라에 근대적인 정치 체제가 들어온지 50년이 지났다. 미국의 원조로 자유민주주의를 택해 정치조직을 구성한 초기의 정치는 당연히 미숙하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만한 정치 운영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초기의 정치구조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인 체제였다. 「각하」라 불리며 정치의 중심을 차지한 이들의 말이 곧 법이었으며 그들의 선택은 언제나 현명한 선택이라 여겨졌다. 이러한 정치체제 아래에서 국민들은 언제나 대통령에게 외경심을 갖고 존경했다.
그러나 이런 억압적이고 사회 통제적인 분위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시대는 변하였고 사람들의 의식 또한 변하엿다.
국민들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으며, 이 자유를 위해서 그들의 몸을 바쳤다. 이리하여 하향식, 통제 정부는 그들의 정치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무너질수 밖에 없었다. 이런 권위주의적 정부의 좌초 뒤에 도래한 문민정부는 억압된, 암울한 삶을 산 국민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이 문민정부도 그전의 권위주의 정부의 틀은 벗어나긴 했지만 급속한 개혁으로 인한 후유증과 지도자의 개인적 도덕심의 상실로 국민들에게 제2의 국난을 안겨준 채 용두사미와 같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 현재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외길인생을 달려오신 분으로서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취임 2년이 되어가는 현 시점에서 김대중 정권의 경제부문에 있어서의 성공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바라보는 정부, 국회는 정말 한심할 따름이다. 끝날 줄 모르는 국회 파행과 비리, 탈세, 병역의무 기피 등 그들은 국민들에게 권력을 잡은 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온갖 추한 모습은 다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잃게 하고 더 이상 국가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즉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는 군사정부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도 아니요, 어리석은 국민들을 따라서 우둔한 정치를 펴는 정부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의 힘을 방패삼아 도덕적 양심을 버린 채 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자의 비양심이다. 권력자의 부패는 그 어떤 제도적 문제보다도 더 치명적인 것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라는 말에 등장하는 국민이 과연 대한민국에는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 강평
이태동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사회에 귀속되어 일생을 살아가다 죽게 된다. 그래서 개인은 훌륭한 사회에 귀속되면, 그만큼 행복하게 살 기회를 얻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좋지 못한 사회에 살 것 같으면 그만큼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잘 되는가 못되는가는, 물론 일차적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달려있지만, 크게 보아 그것은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더욱이 과거 국민 전체가 국가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고대 아테네의 고전적 민주주의 상황과 달리, 무수한 국가 구성원의 세세한 의견을 모두 수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거대해진 현대 정치상황 아래에서는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어떤 의견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직한 정치의 본질은 이상사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의 뜻과 힘을 결합시키는 조화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헨리 3세」라는 작품에서 「정치와 통치는 타협의 기술이자 한 가지 관심사를 다른 관심사와 저울질하는 기술」이라고 했고, 우드루 윌슨 대통령은 그것을 「국가에 봉사하는 강력한 지성(知性)의 철저한 헌신(獻身)에서 나오는 고귀하고 명확하며 일관된 목표의 실현을 위한 단호하고 치열한 전진」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의 인용문인 『플루타크 영웅전』가운데 지시문으로 발췌하여 소개했던 내용 역시 정치와 정치 지도자에 대한 본질과 역할을 국민의 뜻과 힘을 결집시키기 위한 일종의 조화로인 기술로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정치에 대한 위의 정의내림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정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우리의 과거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불행히도 한국의 정치 모습에서는 이러한 「조화와 타협의 기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그것은 국민의 뜻을 무시하거나 역행하는 정치권의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고 대결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있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과거 군사정권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혹한 힘의 정치를 해왔고, 민주화 이후에는 그 표현방식만 다를 뿐, 바람같이 변하는 국민들의 여론, 즉 표를 의식해서 백성들의 뜻을 피상적으로만 추종하는 또 다른 무정부적 정치폭력을 행사하는 후진적인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민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는 정치가 행해지기 위해 필요한 선결과제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학생들의 글에 대한 강평을 소개하기에 앞서, 출제자가 이번 주 논술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했던 질문의 핵심은 바로 이것과 관련된 문제였음을 밝혀둔다.
이번 주의 최우수작으로 뽑은 김선미(순천여고)의 글은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한국정치의 어제와 오늘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쓰기 힘든 서론에 해당하는 도입부는 논지(論旨)설정을 핵심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본론 또한 정치가들의 정치적 신념과 그것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국민여론의 함수관계를 투명하고 명확하게 밝힌 후, 우리의 정치사가 안고 있었던 문제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말의 경제성을 살리면서 과거는 물론 오늘의 정치현실이 나타내고 있는 취약점을 솔직하게 비판한 점이 돋보였다. 결론 역시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우수 1로 뽑힌 김병관(부천고)의 글은 역시 출제자의 의도와 인용문의 뜻을 나름대로 파악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도입부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었던 것과,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제시한 정치 지도자상과 연관지어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구조적으로 밝히는데 있어서는 논리적인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 결론 역시 문제의 핵심을 전달하기보다는 교훈적으로 흐르고 있어 글의 초점이 흐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수 2로 뽑힌 홍진우(대일외고)는 자신의 글에 출제자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서론부분이 장황하고 주어진 문제의 핵심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지 못한 본론부분 역시 아쉬웠다. 또한 결론에 대한 단락이 없었던 것도 지적받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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