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 신자로서 『성경에 손을 얹고』 한 말이 거짓인가 보다. 더군다나 그 말은 국회가 청문회를 열기 한참 전인 수사단계 때 검찰에 의해 짜맞추어진 것이라는 소식이다.특별검사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옷 사건은 더이상 고관 마나님이 재벌총수 부인에게 손을 내밀고 옷가게 주인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 한몫 챙기려 한 저질 「로비」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검찰이 총장부인을 끼고 돌면서 진실을 은폐·조작한 사건이 되고 만다.
게다가 청문회에서 그 시나리오에 따라 위증이 이루어졌다면 검찰은 국회를 무력화시켰다는 비판까지 면할 수 없다. 「법치(法治)」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그 주역이어야 할 검찰이 흔들어 놓은 셈이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은 혐오감을 느낄 뿐 놀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이고 특권층의 일원이라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인가 하는 눈치이다.
이처럼 시민사회에 팽배한 불신을 확인이나 시켜주려는 듯 이근안 사건이 터졌다. 수사 중간단계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이미 경찰의 위상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하다. 전문가로서 출장고문까지 수시로 나섰던 경감의 배후에는 치안감이 있었고 치안감의 뒤에는 더 높은 치안본부장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그 본부장은 「경찰발전기금」의 미명 아래 카지노 대부로부터 10억원을 거두어 수족인 치안감에게 전별금 형태로 건네주었다고 한다. 고문을 은폐하기 위한 조직적 비리이자 음모였다.
그러나 놀라는 시민은 많지 않다. 오히려 대다수는 『카지노 대부가 얼마나 많은 특혜를 받았길래 10억원이나 내놓았을까』하고 반문하고 『분명히 본부장보다 더 힘센 「윗분」이 최후의 비호세력으로 여전히 숨어 있다』고 확신한다.
국민적 불신을 치유불능 상태로까지 악화시키기는 언론문건 파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기자는 신문을 길들일 전략을 보고서에 담아 여권실세에게 올렸다. 지난 대선 때 국민회의 비자금을 추적하고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모금하면서까지 정권교체를 저지하려 한 국세청을 바로 그 언론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삼자는 의견을 넌지시 비추면서 말이다.
한편 다른 기자는 여당에서 그 문건을 복사하여 재정적 후견인인 야당의원에게 넘겼다. 말하자면 「이중 스파이」였다.
그런데 국민은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권언관계는 항상 그렇고 그러한 것 아닌가」하고 중얼거린다. 그러다 여당이 문건파동의 진상을 가리기는커녕 오히려 폭로 야당의원을 공격하는 우회 전략에만 나서자 「역시」라는 독백을 내뱉고 얼굴을 찌푸린다.
민심이반이 심각하다. 그러나 여권의 대응은 안일하다. 정부 각 부처가 여론비판을 면하기 위하여 정보를 독점하고 사건을 깔고 뭉개려다 정치적 의혹만을 샀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보좌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책조정」에만 나선다.
잘못 짚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권력구조에서 빚어진 위기이다. 검찰과 경찰 및 국세청이 한 정당의 수중에 있는 한 시의적절한 정책조정은 불가능하다. 권력 「안」과 「밖」에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 구성원은 저마다 은폐 및 우회 전략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온갖 무리수를 두기만 한다.
그 피해는 결국 정부 전체의 몫이다. 민심이반의 역풍이 불고 권력누수의 씨앗이 배태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는 권력구조의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특별검사팀을 구성할 권한을 국회에게 넘기고 국세청을 독립시켜야 한다. 아울러 검경 조직을 중앙과 지방정부로 이원화시켜 그 안과 밖에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나친 권력집중은 권력누수를 낳는다.
/ 김병국 고려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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