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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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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입력
1999.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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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는 기둥과 보만으로 이뤄진 누각이다.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 남긴 듯한 이 누각은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움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서양건축에 순결주의 운동이라는 게 있다. 온갖 장식물로 어둡고 무거워진 교회건물에 대한 반발로 18세기에 나타난 이 경향은 최소한의 부재로 간결미를 추구하는 것인데,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다. 병산서원 만대루와 서양 건축의 순결주의는 건축 이념에서 서로 닮은 셈이다.

20년간 우리 옛 건축을 답사해온 서양건축사학자 임석재(이화여대 교수)는 이처럼 두 건축에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시공의 간격을 뛰어넘는 공통의 고민을 발견했다.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은 양자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정리함으로써 우리 옛건축의 가치를 새롭게 밝혀내고 있다.

책은 건물 구성요소, 건축 구성원리, 건물 감상법의 3부로 되어있으며 지붕과 처마, 돌과 담, 구조미학, 대칭과 비대칭, 사선과 긴장감 등 18개 주제를 중심으로 동서의 건축미학을 나란히 펼쳐보이고 있다.

안동 봉정사의 울퉁불퉁한 돌계단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라우렌티아 도서관의 실내계단, 휜 기둥을 사용해 쓰러질듯 서있는 개심사 범종각과 건물을 일부러 찌그러진 모습으로 짓는 서양 현대건축의 해체주의,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부드러운 선과 서양 형태주의 건물의 곡선 지붕 등 많은 사례를 비교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우리 옛 건축의 특징으로 그는 은근하고 편안한 멋과 자연스러움을 꼽는다. 예컨대 개심사 범종각의 잔뜩 휘어진 나무 기둥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의 미학에서 출발하지만 서양 해체주의 건물의 찌그러진 모양은 자연을 왜곡해서라도 정형성을 벗어나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서양건축은 한계에 이를 때마다 동양건축에서 돌파구를 찾았다면서

요즘 우리 건축의 서양 무작정 따라하기를 비판한다. 『보물은 집안에 있는데 밖에서 찾는 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것이 서양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것을 천대하거나 반대로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식의 민족주의에 매달릴 게 아니라 우리 것과 서양 것의 장점을 하나로 함침으로써 우리의 조형환경을 좀 더 좋게 만들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이 책의 장점은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을 우리의 전통적 시각에서 또 서양 건축의 시각에서 동시 에 분석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힌 데 있다. 또 차분한 필치로 쉽게 쓰여져 읽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동안 나온 한국 전통건축 관련서가 대부분 전문가용 아니면 답사기 수준의 얕은 이해에 그치고 있는 것과 달리 깊이와 대중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은이는 95년부터 서양 근현대건축사에 관한 30권 시리즈의 집필을 시작해 지금까지 6권을 냈으며 7, 8권을 준비 중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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