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KBS홀 무대에 선 나는 굵은 눈물을 한없이 떨구었다. 가요대상을 움켜 쥐었다는 기쁨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래를 하는 동안 내 머리속에는 오직 「어머니」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눈물이 났다.나의 어머니 곽순자(66). 어머니가 삶의 든든한 방패막이요 평온한 안식처라고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어머니 그 이상이었다. 다정한 누님이요, 엄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바로 「톱가수 설운도」를 만든 주인공이셨다.
어린 나를 등에 업고 부산 해운대 바닥을 발이 퉁퉁 붓도록 걸어다니며 장사하시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6남매가 잘 되기를 바라며 꿋꿋이 견뎌내시던 어머니…. 정말이지 어머니가 고생한 것은 소설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다. 그래서 어머니가 95년 정부로부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것은 내 생애 최고의 기쁨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가 치과의사여서 고생을 모르고 풍족하게 자랐다. 당시로는 드물게 명문 고등학교(경북여고)를 나왔던 어머니는 미인이었을 뿐아니라 고교 배구부 주장을 맡을 만큼 활달했다. 특히 노래를 잘 부르셨는데, 내가 가수로 성공한 것도 어머니 재능을 이어 받았기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는 고교 졸업 후 해운대 근처 하숙집에 거처를 얻고 직장 생활을 하다 미군 통역관이던 아버지를 만났다. 휴가를 나온 아버지는 하숙하는 친척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한 때는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술과 여자에 빠져들고 급기야 당시 유행하던 마약에 손을 대면서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 일로 직장에서 쫓겨난 아버지는 상심끝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 하반신 불수가 됐다. 절망에 빠진 아버지는 살림살이를 부수고 어머니를 때리는 게 일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앞으로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지금까지 그 원칙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는 노점상, 행상 등을 하며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갔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도 가난은 지긋지긋하게 우리 가족을 옥죄었다. 나는 중학교에 어렵사리 입학했지만 매번 학비를 제 때 내지못해 쩔쩔맸다. 한 번은 학비를 도저히 내기 어려워 자포자기한 상태였는데, 우연히 「진옥 엄마」라는 어머니 고교 동창생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진옥 엄마는 부산 광안리에 놀러왔다가 군고구마를 파는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고 한다. 남부럽지않던 의사집안의 딸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에 놀라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다가 돌아서며 어머니 손에 말없이 돈을 쥐어주었다던가.
내가 17세가 되던 해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흔히 아버지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진다」는 천붕(天崩)에 빗대지만, 당시 나의 마음은 슬픔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이 글을 빌어 아버지의 명복을 빈다. 아버지는 본래 꽃에 새 순이 돋는 것을 보고도 기뻐할 정도로 순수한 분이셨다. 자신의 꿈이 좌절되면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술에 빠진 것이다.
어느 날 집안 사정을 보다못한 나는 몰래 연탄배달소를 찾아가 일을 자청했다. 하루종일 연탄을 나르고 돌아오니 캄캄한 밤이었다. 얼굴이 새카만 채로 집에 들어가 어머니 앞에 조용히 4,500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해하다 상황을 짐작하시고는 내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셨다. 동생들도 따라 울어 집안은 금새 울음바다로 변했다.
어머니의 삶은 이처럼 힘겨웠지만 순수한 마음은 잃지 않으셨다. 사람을 너무 잘 믿는 탓에 사기를 여러 번 당하면서도 한 번도 고소를 하지 않았다. 몇년 전 10억원을 사기당한 적이 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 『나를 믿고 사업에 투자하라』고 해 가계수표를 끊어주었다가 사기당한 것이다. 그 사람은 전과 3범의 사기꾼으로 밝혀졌다.
나는 하도 화가 나서 당장 고소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아서라, 그 사람도 얼마나 힘이 들면 사기를 쳤겠니. 내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서 네가 잘되는 것이다』라고 하시며 조용히 웃기만 했다.
너무 가난했기에 세상에 대해 분노를 품었던 시절, 어머니는 내게 조건없는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스타가 되기전에 인간이 돼야 한다. 나는 「노래 잘 하는 설운도」보다 「인간 설운도」가 좋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자 2남1녀의 아버지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과연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설운도 ◇95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뒤 어머니와 나. ◇64년에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어머니, 나, 누나, 아버지.
◇설운도는 누구 : 58년 부산 출생. 본명 이영춘. 건국대 경영대학원 졸업. 82년 KBS 「신인 탄생」프로에 5주연속우승, 다음 해 「잃어버린 30년」앨범 출반으로 정식 데뷔했고 KBS 10대 가수상 수상. 89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해 이듬 해 MBC 10대 가수 선정. KBS 올해의 가수상(96),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96, 98), KBS가요대상(98) 등 수상. 국무총리 선행연예인 표창(98). 대표곡 「쌈바의 여인」「사랑의 트위스트」「다 함께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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