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연구원이 17일 발표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19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공청회에서는 찬반 의견이 함께 쏟아졌지만 개정의 필요성이나 새 표기의 큰 틀은 대체로 긍정하는 쪽이었다. 로마자 표기법 개정이 잦은 점, 일부 철자의 표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남기심(南基心) 연세대 교수가 사회를 본 공청회에서는 국어연구원 김세중(金世中) 어문자료연구부장이 표기법 개정시안을 설명하고 송기중(宋基中·서울대) 정 광(鄭 光·고려대) 정 국(鄭 國·한국외국어대) 교수와 김복문(金福文) 전 충북대 교수가 토론했다.
정 국 교수는 이번 개정안이 로마자 표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국어 1음운 1기호를 채택했고 국어의 음소 구별을 존중했으며 영어 등 특정언어의 철자표기에 구애받지 않은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정 교수는 『국어의 평음인 ㄱ, ㄷ, ㅂ, ㅈ과 ㅋ, ㅌ, ㅍ, ㅊ의 구별을 어두에서는 g, d, b, j로, 어미에서는 k, t, p, ch로 하는 등 (예/부산·Busan, 호법·Hobeop) 국어 음소의 차이를 표기에서 문자의 차이로 표현한 것은 음소 구별을 로마자 표기에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선』이라고 말했다.
특히 반달표나 어깻점 등 특수 부호를 폐지한 것은 진작 이뤄져야 할 일로 평가했다. 그는 『반달표가 붙은 o, u나 p', t', ch' 등은 근본적으로 로마자가 아닐 뿐더러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알 수 없는 부호이므로 설사 배운다 하더라도 쉽게 해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컴퓨터 등을 이용하는데도 장애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 광 교수는 『로마자 표기문제가 오래 논의한 내용이고 뾰족한 대안이 없을 경우는 이번 안을 사용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르는가 지켜본 다음에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심스런 의견을 내놓았다.
반대 의견은 송기중 교수가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송교수는 가만 두어도 될 로마자 표기를 정부가 다시 건드려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는 『50년 동안 로마자 표기법을 4차례나 개정하고 로마자 표기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인력과 예산을 소비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로마자 표기 개정은 표기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진 극소수 인사들이 오해에 바탕한 주장을 내놓으면서 촉발했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지금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안대로 바꾸면 당장 2년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대회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Busan/Pusan, Daegu/Taegu, Jeonju/Chonju처럼 여러 지명들을 이중으로 표기한 안내장을 배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쓰고 있는 표기도 문제가 적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통일한 상황에서 굳이 개정의 필요성이 있는가고 되물었다.
정 국 교수는 개정안이 ㄱ, ㄷ, ㅂ, ㄹ을 각각 g/k, d/t, b/p, l/r 등 두 가지로 표기하고 있고 ㄱ과 ㅋ을 모음 앞에서는 음소구분하면서도 어말이나 자음 앞에서는 똑같이 k로 표기하는 점 등은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 광 교수도 김포를 Kimpo에서 Gimpo로 바꿀 경우 외국 여행객들이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정한 음가를 가지는 영어 철자를 발음부호처럼 사용해 로마자로 표기하는 독특한 주장을 펼쳐온 김복문 교수는 개정안의 로마자 표기 발음 기준이 어느나라 언어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고 국제표준화기구 원칙이나 일본 등의 로마자 표기 원칙과 맞지 않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한편 한글학회 허 웅(許 雄)회장은 공청회에는 참가하지 않았으나 『아무도 쓰지 않던 특수부호를 없앤 점, ㅅ을 s로 통일하고 ㄱ, ㄷ, ㅂ, ㅈ의 표기를 g, d, b, j로 바꾼 점 등 개정안의 큰 틀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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