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첩 리철순」(10월), 「탈옥녀 신창순」(11월), 「주재소 습격작전」(12월).이젠 패러디와 장르 혼합(하이브리드)이다. 최근 16㎜ 성인 비디오 업계가 호황이다. 제목만으로도 인구에 회자되면서 연말 성인 비디오 시장이 특수 분위기다.
「여간첩 리철순」은 제목부터 영화 구성까지 철저히 「간첩 리철진」과 「쉬리」를 베꼈다. 성고문까지 당하면서 혹독한 남파훈련을 겪는 과정은 영화 「쉬리」를, 남쪽에 내려와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간첩 리철진」이다. 탈주범 신창원 사건을 패러디한 「탈옥녀 신창순」은 「남자들만 있으면 끝까지 버틴다」는 카피가 말해주듯 탈주한 신창순이 남성들을 이용해 도피행각을 벌이는 과정을 담고 단순한 에로 비디오들에 비해 스토리텔링이 강하고 액션이 가미됐다. 카메라 워킹이 훨씬 현란해졌고, 화질도 좋아졌다. 「탈옥녀 신창순」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폭우 장면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촬영기법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극영화 기법을 도입한 대작」이라고 자찬하고 장르의 복합현상은 에로 비디오도 비껴 가지 않는 것이다.
에로 비디오는 세상에 발빠르게 대응한다. 88년 「산머루」를 시작으로 「야시장」 「정사수표」 시리즈가 나왔다. 이 때는 얼마나 야한 영화인가가 관심거리. 「성애의 여행」 처럼 외국 로케이션을 하는 「대작」 비디오도 나왔으나 제작비 부담으로 오래가지는 못했다. 「젖소부인」 시리즈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제목이 유머의 소재로 쓰이면서 내용보다는 「제목」이 승부처가 된 것이다. 이후 「꽈배기 부인」 「만두부인」 등 각종 「부인」 시리즈가 나왔고, 사극 「용의 눈물」을 패러디한 「용의 국물」, 「노랑 머리」와 헷갈리는 「노란 머리」 등 제목만으로 손님을 끌려는 비디오들이 쏟아졌다. 올 상반기 O양 비디오 사건 이후 「몰카(몰래카메라)」시리즈, 여중·여고생 성애물인 「학원물」이 나오기도 했으나 내용과 제목이 저급해 일부 소비자들이 찾는데 그쳤다.
패러디가 인기를 끄는 것은 에로 비디오를 시청하는 데 느낄 법한 일종의 도덕적 강박관념이 유머러스한 상황과 쉽게 치환되기 때문이다. 성적 담론이 일반화되면서 인기 극영화의 제목과 내용을 패러디한 「웃기는 야한 비디오」에 대한 반감은 어느 때보다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청소년들마저도 아무 부담없이 에로 비디오 주시청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는 점이다. 「빨간 딱지」 비디오는 내용도, 시청층도 더욱 광범해지면서 「성(性) 공화국」의 반경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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