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고 묻지 않는다. 때문에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러 다 얘기하지 않는다. 영화가 「잘 들려주는 이야기」인 시대는 지났는가? 친절한 서술이나, 논리적인 판단도 요구하지 않는다. 물으면 「그냥」이다. 느낌이고 분위기이다. 관객은 그것에 감흥하고,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관객이 바뀌었다. 감독들도 바뀌었다. 이른바 영상세대들. 그들이 「주유소 습격사건」(감독 김상진)과 「텔 미 썸딩」(감독 장윤현)을 만들었고, 그들이 그것에 열광한다.「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네 명의 젊은이는 『우리는 이래서 한다』거나 『우리는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가 사회모순, 소외를 주장하거나 설명했다면 오히려 썰렁한 코미디가 됐을 것이다. 무대포(유오성)가 아무런 기준없이 『대가리 박어』 하는 말에 즐거워하고, 딴다라(강성진)가 막무가내로 노래시키는 것이 재미있다.
오히려 영화 후반부에 그들의 과거를 살짝 보여주는 장면이 어색하게 보일 정도다. 김상진 감독도 『처음에는 너무 설명이 빈약할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N세대에게 그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영화란 머리로 받아들이는 이성이 아니라 온몸으로 순간순간 느끼는 감성인 것이다. 네 명이 정말 주유소를 습격한 건지 아니면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상상한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몽환적 체험에 18일까지 서울 관객 82만명이 빨려 들어갔다.
「하드고어 스릴러」를 표방한 「텔 미 썸딩」은 불친절하다. 치밀하게 사건을 구성하고, 그것을 완벽한 논리로 마무리하는 스릴러의 고전적 틀을 무너뜨렸다. 공포는 행위가 아닌 음산한 분위기로 다가오고, 범인인 채수연(심은하)과 조형사(한석규)는 어둡고 비내리는 공간에서 그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이미지 만들기에만 충실한다. 영화는 「열린 구조」라는 이유를 달고 영화 속의 모든 관계와 진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장윤현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보고나서 다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살인과 시체와 피와 정신적 광기조차 감성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텔 미 썸딩」은 개봉 5일만에 25만명(서울)의 관객을 몽롱한 공포에 취하게 했고, 그것에서 깨어나자마자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게 했다. 「대박」이다.
서사와 리얼리즘, 객관적 논리보다는 몽환적 이미지로서 영화감상은 이미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듯한 시각적 영상에서는 살인도 판타지가 됐다. 그만큼 한국영화도 이제는 관객의 정서를 알고 접근한다. 세 작품에 모두 투자해 성공한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대표는 이를 『정교해졌다』고 표현한다. 서사구조나 리얼리즘의 치밀함이 아니라 영상세대의 감각과 감성에 맞는 표현법의 창출을 말한다.
영화의 완성도나 내러티브의 설득력은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소설 보다는 만화를 읽고, 만화보다는 사이버세계를 즐기는 세대들에게 영화에서 사실주의는 낡은 유물이다. 영화도 예술도 그냥 내 마음, 느낌이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그것을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따지지도 않는다. 「노랑머리」에서 여자 주인공이 나이트클럽에서 다짜고짜 남자를 데려와, 「거짓말」의 Y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찾아가 섹스를 해도 『왜?』라며 비웃지 않는다. 그들의 「묻지마」 문화는 「묻지마 관광」 「묻지마 나이트」처럼 죄의식을 숨기는 익명성의 약속인 기성세대의 것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있는 그대로의 감성적 즉물적인 그들의 『묻지마』 『설명하려 하지마』는 기성세대들의 자기합리화와 위선에 대한 일종의 침뱉기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왜 「주유소 습격사건」이 좋으냐』라고 물어보라.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뻔하다. 어느 광고처럼 『묻지마! 다쳐』.
이대현기자
leedh@hk.co.kr
■「혹시?」가 아니다. 확실해졌다. 올해 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40%」를 돌파한다. 할리우드 직배 공세에 93년 15.9%까지 추락한 지 6년, 83년 39.9%를 기록한 지 16년만이다. 3년 전(23. 1%)만 해도 30%가 목표였는데.
새해 첫날부터 달랐다. 외화들이 소문만 믿고 맞대결을 슬슬 피했다. 그 덕인지 「미술관옆 동물원」이 45만명(이하 서울), 「태양은 없다」가 33만명을 가볍게 기록하더니 곧바로 「쉬리」(243만명) 태풍이 몰아쳤고, 그 바람을 타고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까지 20만명을 넘겼다. 여름에는 「링」(34만명)과 「용가리」(50만명) 가 있었고, 가을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71만명)와 「유령」(36만명)이 있었다. 「자귀모」도 41만명. 「주유소습격사건」과 「텔 미 썸딩」이 지나가면 그 자리를 「해피 엔드」와 「여고괴담2」가 기다린다. 지난해 영화 관람객은 5,017만여명. 그 중 한국영화 관객은 1,258만여명(25.4%). 그러나 올해는 벌써 2,000만명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한국영화가 달라졌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한결같이 새로운 맛을 준다. 철저히 젊은 감각에 맞추었다. 한 영화(「텔 미 썸딩」)를 전국 110여개 극장에 걸 정도로 막강해진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의 배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몇년전 음반시장이 그랬듯 영화도 이제 「외국에서 우리 것」으로의 U턴을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되리란 전망이다. 한국영화가 그만큼 관객을 위해 계산되고 정교해졌다는 얘기다.
「시장점유율 40%」는 영화인들의 꿈인 동시에 우려이기도 하다. 영화인들 스스로 정해놓은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 유지의 상한선이다.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배우 문성근씨는 말한다. 그러나 만약 스크린쿼터가 없다면 이런 성적이 가능힐까. 영화인들은 모두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투자가 위축되고, 배급력이 약화되고, 과감한 기획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가 없다. /이대현기자
극장앞에 몰린 관객들. 그들은 『한국영화도 요즘 젊은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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