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도서관이 어디 있긴 있었는데…』 서울 A고등학교 2학년 L(17)양은 도서관 위치를 묻자 멈칫했다. 이 학교 도서관은 올초 돌연 교실로 둔갑했다. 학교측의 설명은 『학생들의 이용도가 떨어지고 학생수에 비해 교실이 모자라 용도변경했다』는 것. 하지만 학생들은 『장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전문 도서지도교사도 없어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도가 떨어지자 학교측이 도서관을 페쇄했다』고 말하고 있다.학생수준과 교육의 질이 높기로 소문난 서울 B외국어고도 도서구입비가 전무해 도서관은 그저 장소와 이름만 남아있는 상태다.
전국 1만여개 초·중·고교 도서관이 예산부족과 학교측의 무관심으로 폐쇄되거나 기껏해야 「자습실」 정도로 이용되는 등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열린 교육이 강의식 주입교육의 대안으로 대두되면서 학생들의 창의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제2의 교실」인 교내 도서관은 찬밥신세다.
99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학교도서관의 학생 1인당 장서수는 4∼5권, 연간 도서구입비는 1인당 2,000원 내외에 머물고 있다. 70∼80년대 서적과 세로쓰기 책으로 채워진 도서관도 적지않다. 또 전국의 학교중 사서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고작 130여개교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서 체계적인 독서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전무하다. 일선학교도 국어(논술)시험에 대비한 도서목록을 소개해 주고 천편일률적으로 몇권의 책을 읽게 한 뒤 독후감을 써보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 관악구 B중학교 임모(42)교사는 『학과 진도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별도로 독서교육을 실시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박금희(朴錦姬·28)사업팀장은 『학생들에게 책을 읽는 습관과 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도서관 사업이 일선 초·중·고에서 도외시되고 있다』며 『교사와 학부모는 책을 읽으라고 윽박지르지만 학생들이 책읽을 환경은 극도로 열악하다』고 말했다.
박사업팀장은 또 『전국 80여개 초·중·고교만이 의욕적으로 도서관 사업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며 『학생들에게 책에서 「양분」을 뽑아내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전문 사서교사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장서 확보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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