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개막되는 제1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 출전할 한국대표 선발 문제를 놓고 한국기원 집행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농심배는 국내 타이틀 보유자, 전년도 상금 랭킹 상위자의 순으로 대표선수를 선발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 한국기원 소속기사 전원이 똑같은 입장에서 예선전을 벌인다. 이를 통해 대표선수 4명을 선발하되 최강자들의 뜻밖의 탈락에 대비, 나머지 한 자리는 예선 성적과 관계없이 주최측이 임의로 결정하는 이른바 와일드카드 제도를 채택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4인방 가운데 이창호와 조훈현은 가볍게 예선을 통과했으나 유창혁 서봉수가 탈락한 것.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유창혁이 배달왕 LG정유배 등 2관왕에 후지쓰배 우승으로 10월말까지 획득한 상금이 3억여원인데 반해 서봉수는 7년째 무관인데다 상금 총액도 4,000만원 남짓으로 시쳇말로 게임이 되지 않았다. 한데 서봉수가 지난 5일 벌어진 LG정유배 결승전에서 유창혁을 꺾고 우승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이제는 서봉수와 유창혁이 각각 국내 타이틀 한 개씩으로 같은 입장인데다 유창혁이 상금 랭킹에서는 단연 앞서지만 서봉수가 이 대회의 전신인 96년 진로배에서 혼자 9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했던 공적을 결코 무시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바둑인들 사이에서 강하게 대두된 것.
이러한 논란속에 여러가지 루머까지 난무하자 한국기원 측은 바둑 기자단 투표라는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는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겠다는 뜻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뒷말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면피작전인 셈. 하지만 이는 한국 바둑계 총본산이라고 자처하는 한국기원이 스스로 자신의 고유권한인 국가대표 선발권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발상이 아니냐는 바둑계 내부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한국기원은 15일로 예정됐던 바둑기자단 투표계획을 변경, 한국기원 집행부와 기사회 간부들의 합동회의를 통해 선발문제를 최종결정키로 했다.
와일드 카드제가 이번에 유독 문제가 된 것은 국가 대항 연승전이라는 농심배의 독특한 진행방식 때문. 선수 5명이 우승 상금 1억2,000만원을 똑같이 배분하기 때문에 자신은 1승도 거두지 못했더라도 대표선수로 선발되었다는 자체로 웬만한 국내 타이틀 상금에 버금가는 거금을 손에 쥘 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같이 「잿밥」만을 의식해서 과열현상을 보이는 것이 자칫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박영철·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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