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10년10개월동안 고달픈 도피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한 대공수사팀과의 빗나간 「의리」와 질긴 「인연」때문이었다.이씨와 함께 지난 85년 김근태씨 고문사건을 담당했던 수사팀은 박처원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을 비롯해 윤재호 대공수사1과장(사망), 김수현 대공수사1반장, 백남은 대공수사2반장, 김준홍 기술반장(사망) 등.
이씨는 이중 국내 대공수사 분야의 거물인 박씨, 김수현씨, 백씨와는 오랜 세월동안 한솥밥을 먹고 생사를 함께 나눈 탓에 핏줄보다 진한 「인연」을 맺게 됐다.
88년12월 검찰에서 수배될 당시 자수를 결심했던 이씨가 결국 도피행각이라는 가시밭길을 걷게된 것도 평소 「대부」로 떠받들던 박씨의 한마디 설득때문이었다.
이씨의 부인 신씨는 이와 관련, 검찰에서 『남편이 숨은 것도 대공수사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박씨 못지않게 김씨를 「형님」으로 부르며 깍듯이 대접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김씨는 이씨의 도피사실을 최초로 알고도 이씨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잘못된 「의리」를 보여줬다.
김씨가 이씨의 도피기간중 이씨를 직접 만난 것은 지난 95년5월께. 당시 이씨는 자신의 공소시효 문제를 박씨에게 물어보다 「모른다」는 답변을 듣게되자, 답답한 나머지 부인 신씨를 통해 김씨를 불러냈다. 김씨는 전 민청련의장 김근태씨 고문사건으로 1심재판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신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 부근 다방에서 김씨를 만나 『남편이 수년전부터 집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며 『현재 건강이 굉장히 좋지않다』고 귀띔해줬다.
깜짝 놀란 김씨는 『집에서 직접 만나보겠다』며 달려갔고, 김씨는 그 곳에서 도피생활로 찌든 모습의 이씨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날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동안 울먹인 뒤 소주를 마시며 서로의 처지를 「위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백씨와도 남다른 친분관계를 갖고 있었다. 지난 80년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근무할 때 반장인 백씨를 처음 만나 5년간을 함께 대공수사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씨는 자신의 도피기간중 치러진 차남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고 백씨에게 청첩장을 보냈고, 백씨 역시 10만원을 축의금으로 내는 성의를 보였다. 백씨는 김근태씨 고문사건으로 복역하다 95년2월 만기출소한 뒤에는 자신이 상사로 모셨던 박씨 집에 들러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박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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