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상태에 놓였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미중 협상이 막판타결로 매듭지어진 것은 주룽지(朱鎔基·71·사진) 총리의 가세 덕분이었다. 이번 협상을 직접 챙겨온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주문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朱총리의 협상참여는 그에게는 정치적 승부수였다.사실 朱총리는 바로 WTO 가입협상때문에 입지가 크게 약해졌다. 정확히는 지난 4월 WTO 연내가입을 위한 미국 방문이 성과없이 끝난 때부터였다. 당시 그는 농산물 수입 장벽을 낮추고 무선전화 및 인터넷 회사에 대한 외국인 소유를 허용하는 등 성의있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갔다. 하지만 인권탄압 시비와 핵무기 제조기술 스파이 문제 등으로 인해 미국내 여론이 악화, 결국 기대에 못미친다는 이유로 미국의 「퇴짜」를 맞았다.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이 터지면서 朱총리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가 됐다. 개혁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원로 및 기득권층으로부터 맹공을 받았다. 일부 인사들은 『朱총리가 지나치게 저자세로 일관, 결과적으로 미국의 음모에 말려드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江주석도 가세했다. 그는 朱총리가 주도하던 국유기업의 개혁을 우방궈(吳邦國) 부총리에게, WTO 개입협상은 스광성(石廣生)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에게 각각 넘겨버렸다. 江주석이 경제를 직접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朱총리의 실각설이 나돌았다. 「중국판 고르바초프」라 불리기도 하는 朱총리의 입지 축소는 그러나 미국 등 서방 선진국에게 결코 반갑지않은 일이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외부세계가 보다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중국을 원한다면 그러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朱총리에 깊은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朱총리가 오랜만에 전면에 나선 이번 협상마저 결렬될 경우 그의 입지회복도, 중국의 개혁과 개방도 어렵다는게 서방의 일반적 분석이었다. 반대로 협상 타결은 朱총리 등 개혁파의 입지 회복을 의미한다. 물론 앞으로 반개혁파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의 과제가 남기는 했지만 朱총리가 「큰 산」을 하나 넘어서면서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위상을 확고히 한 것만은 틀림없다.
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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