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해마다 패션업계는 유행색을 발표한다. 『내년 새 밀레니엄에는 무슨 색이 유행할지 아십니까』하는 질문을 던지면 웬 한가한 소리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이 계절의 유행색, 올해의 유행색 발표를 옷을 팔기 위한 패션업계의 장난으로만 치부할 수도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도 색깔에 관심을 가지며 유행색이 발표되면 기사를 찾아 읽는다. 우리의 생활에서 색깔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이 세상의 색이란 다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해의 유행색을 크게 벗어나면 얼마나 촌티나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우리는 색깔을 무시하고 살기 어렵다.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누구나 밝은 색 옷을 입어 기분전환을 해 보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올 가을 파리 등지에서 열린 패션쇼와 18일부터 열릴 서울아티스트협의회(SFAA) 서울컬렉션의 발표를 따르면 내년 유행색은 밝은 색이 될 것이라 한다. 노랑, 핑크가 가장 강력하고 파스텔색도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망사옷에 감싸인 발레 무용수들을 그린 프랑스화가 드가의 그림에 나타나는 예쁜 색들이 2000년의 유행색이 되리라는 것이다. 온 세계 여성들이 몇년간 줄기차리만큼 즐겨 입었던 검은색, 혹은 어두운 색은 퇴조한다. 실질적으로 전세계의 유행색을 사전조정해 발표하는 프랑스의 직물박람회 프리미어 비전(www.premierevision.fr)에 따르면 새해 2000년은 『청년기의 자유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해이므로』 밝고 화사한 색을 유행색으로 정했다. 검은 색은 불안한 세기말에나 어울렸던 색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어 비전이 유행색을 조정만 한다면 2000년의 새 유행색은 누가 정했을까. 패션업계 종사자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일년에 봄 가을 두 차례 열리는 프리미어 비전은 매회 평균 전세계의 110개국에서 4만명의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에게 유행색을 전시하는데 이 때 내놓는 색상은 시대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3개월 전 70여명의 온 세계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색채학자 환경론자등을 불러 모은 패널 스터디에서 결정한 것이다.
IMF관리체제 이후 모든 산업분야가 힘들다고 하지만 패션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판매부진으로 규모를 줄인 업체, 도산한 디자이너가 많다. 여행가들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이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련되게 옷 입을 줄 아는 재능이 있고 색감에 뛰어나다고 한다. 이 가을 갈색옷을 입은 여성들을 보면, 온갖 색으로 뒤죽박죽 정신없는 우리 정부의 인터넷 홈페이지들과 달리 색을 절제해 입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색채컨설턴트라는 직업도 아직 없고 색채연구를 공식적으로 하는 곳은 이화여대의 색채디자인연구소(http://library.ewha.ac.kr:111)등에 지나지 않을 만큼 우리의 색채연구는 아직 본궤도에 올라 있지 않고 외국의 유행색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준이다. 앞으로 펼쳐질 젊은이들의 색깔감각을 기대해본다.
박금자
par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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